편집 2010.12.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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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_ 한 분조장의 수기
변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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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간지대에 위치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농촌마을에서 나서 자랐다. 수려하고 웅건한 산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바다도 없는 그저 그러루한 고장이였다.
우리 집 뒤에는 《닦은 고개》라고 불리우는 야산이 있었다.
그 별스러운 이름은 거의 실재한것인듯 싶은 전설로부터 생긴것이였다.
어느 해 흉년에 한 농군이 이 고개마루에서 종자를 닦아 먹은 일이 있었다.
배고픔을 참을수가 없어서 그나마 얻어 가던 종자를 닦은것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내렸다. 농군은 앉은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도 고개마루에는 칼로 쩌갠것 같은 바위와 불에 끄슨것처럼 거뭇거뭇한 돌멩이들이 남아있는데 그 전설의 흔적이라는것이였다.
그 돌멩이들은 돌가마를 걸고 종자를 닦은 자리이고 쩌개진 바위는 벼락을 친 자리라고 한다.

고투리를 내여 놓고 다니던 어릴적부터 귀에 익히고 입에 오른 《닦은 고개》전설은 나에게 종자란 무엇이며 종자는 왜 그리도 신성불가침의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때 일찍 깨우쳐 주었다. 한알의 종자는 수십수백배로 불어 날 앞날을 안고 있기에 농민의 꿈이고 희망이며 미래이기도 하다는것을 인생의 진리로 체험하기까지에는 아직 많은 나날이 흘러야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올해 초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찬성과 반대

뜻밖에도 나를 분조장후보로 추천한다는 말을 듣자부터 나는 죄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떨려 났다. 어쩌자고 나 같은것을 추천한단 말인가?
지금 같이 어려운 때에 내가 과연 분조를 이끌수 있단 말인가?
이미 여러 해째 분조장사업을 해 오고 있는 차영세아저씨도 물론 후보자로 추천되였으나 결국 내가 분조장으로 되였다. 첫 순간 한숨이 훌 내불리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의혹과 불만이 구름처럼 가슴속에 서려 들었다.
그것은 나를 찬성한 스무명에 대한 의혹이였고 나를 반대한 다섯명에 대한 불만이였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나를 찬성했을가? 나로 말하면 차영세아저씨보다 농사경험도 조직력도 대비할 정도가 못되는 햇내기가 아닌가? 나 같은것의 어깨우에 수십여정보의 논밭과 분조세간살이, 농장원들의 분배몫까지 실을수 있다고 믿었을가? 나에게는 그것이 의문이였다.

오히려 나를 반대한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갔다.
옳다, 그들은 나를 바로 보았다. 나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도 내가 분조장감은커녕 온전한 농장원감도 못된다고 할것이다.
내가 분조장이 된것을 축하해서 모두들 박수를 쳤다. 그 박수소리는 나에게 어느 정도 신심을 주었다. 어디 한번 부딪쳐 보자 하는 배짱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었다.
차영세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그의 가슴속과 얼굴은 서로 정반대의 감정을 나타내는것이 아닐가?
나는 지은 죄도 없이 그에게 미안하였다.

채홍기아바이는 그 어떤 기대감도 경멸감도 느껴 지지 않는 얼굴이다. 그래도 박수는 치고 있었다. 거쿨진 그의 뒤에 선 탓에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이는 《자투리》- 김숙희아주머니는 박수소리만 짜락짜락할뿐 얼굴은 보이지조차 않는다.
주봉실아주머니는 회의나 모임을 할적마다 내내 부분조장처럼 차영세의 곁에 서군 하더니 오늘은 멀찌감치 떨어 져서 거의 기계적으로 박수소리를 내고 있었다. 진출자처녀 송이는 눈을 내리깔고 침착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 그가 눈에 띄우자 가슴 한구석이 후두둑 뛰였다. 채홍기, 김숙희, 주봉실, 김송이… 아마 이들은 틀림없이 나를 반대했을것이다. 그들은 나의 모든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하여 나는 그들에게 그 어떤 반감도 불만감도 가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 다섯명만의 찬성을 받은 차영세가 부러웠다.
유쾌하지 못한 추억으로 얽힌 그들과 나…

채홍기아바이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이름대신 《드덜기》라고 부른다. 그의 얼굴은 컴컴하고 미간에 새겨 진 주름살은 좀처럼 퍼질줄 모른다.
그의 별명처럼 되여 버린 《드덜기》라는 말은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담을 주기때문에 붙은것 같다.
뽑자고 해도 힘들고 도끼로 패자고 해도 힘든 드덜기나무처럼 도저히 어째볼수가 없는 성질이다.

처음 농장에 나왔을 때 나는 채홍기아바이네 가래질조에서 일하게 되였는데 얼마나 잔소리가 많은지 코털이 다 희여질 정도였다.
그는 담배를 즐겨 했지만 가래질할 때에는 자주 피우지 않았다. 그 대신 잔소리로 일을 쉬우지 않는것이였다. 가래줄 잡는 본새가 틀렸다느니, 눈치가 없다느니, 일솜씨보다 말솜씨가 더 빠르면 못 쓴다느니 하고 찌드럭거리는것이였다.
그는 누구를 칭찬하는적이 별로 없었다. 보다는 시비질을 많이 하였다. 나에 대해서도 례외로 될수 없었다. 오히려 더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런 그도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게 추억해주었다.

《너희 아버지가 분조장할 때 우린 농장적으로 첫 2중천리마를 탔댔지. 그땐 정말 일할 재미가 있었어.》

그러나 그 아버지의 아들인 나와 분조장인 차영세에 대해서는 언제나 못마땅해 하였다.
한번인 이런 일도 있었다. 차영세분조장이 그에게 길옆논의 논두렁을 깎으라고 했는데 그는 골개논부터 해야 한다고 우겼다.
분조장은 할수없이 아바이를 골개논으로 보냈다.
골개논은 길에서 퍼그나 떨어 져 유축진 곳에 있었다. 분조장은 아바이대신 날더러 길옆논을 맡으라고 하였다.
나는 아직 해가 많을 때 일을 끝내였다. 사실 거기는 손 댈것이 별반 없었던것이다. 나는 인수로 물속에서 너울거리는 풀까지 말끔히 뽑아 치웠다.

《래일 도일보사에서 온다는데 창훈아, 네가 여기로 안내해라. 사진도 한장 내달라고 해보렴.…》

분조장이 일터를 돌아 보고 만족해서 하는 소리였다. 나는 얼른 뒤더수기를 만졌다. 머리를 깎아야 했다. 기자가 온다지 않는가.
저녁총화시간에 채홍기아바이는 최고로력일을 받았다. 풀이 무성한 골개논두렁을 맡아 늦게까지 했던것이다. 아바이는 검다 희다 아무 말도 안했으나 언짢은 기색이였다.
분조장모임에 간다면서 차영세가 자리를 뜨자 아바이는 지그시 나에게 눈길을 주는것이였다.
처녀리발사가 세심한 주의를 돌려 멋지게 깎아준 머리와 향긋한 기름냄새, 새로 사 쓴 격자직모자로 하여 내가 좀 다르게 보인 모양이였다.

《넌 오늘 쓸데 없는 간판치장만 했더구나.》
《?!…》

나는 그가 내 외모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줄 알았었다. 그런데 다음말을 듣고보니 아니였다.

《골개논이란 샘틀논은 잡초소굴에 되였는데 길옆논만 치장하면 어떻게 돼? 난 네가 일찌기 끝내고 건너 올줄 알았는데…》

나는 그제서야 영문을 깨달았다.

《도일보사 기자가 온대요.》 하고 내가 설명하자 그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이젠 도에다 대구 거짓말을 할셈인가?》
《왜요? 이만하면 신문에 날수 있지요 뭐.》

나는 성의껏 손질한 나의 수고를 몰라 주는것이 야속하여 항변하듯 말했다.

《넌 눈을 펀히 뜬게 망아지두 아니구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부리는대로 따라 가는거냐?》

아바이의 시비에 또 걸려 들었다고 생각한 나는 곰곰히 궁리를 해보고나서 자신 있게 대꾸했다.

《어쨌든 분조장이 시키는대로 해야지요. 저마다 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마지막엔 뭐가 되냐요?》
《그래두 옳고 그른걸 따려 봐야지. 분조장이 반동이래두 시키는대로 할테냐?》

나는 아연해 졌다. 반동이라구?

《너희 아버지라면 안 그랬을거야. 넌 누굴 닮았니?》
《…》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너무나 옳은 소리를 하고 있는것이였다.
그 다음날 도일보사 기자가 왔을 때 나는 슬그머니 도망을 쳤다. 《도에다 대고 거짓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앞산, 뒤산에서 쌍뻐꾸기가 번갈아 울어 예고 아지랑이가 아물거리던 어느 봄날, 나는 뜻하지 않게 아바이를 노엽혔다.
그날 채홍기아바이는 작업조장이 되여 행수봉포전의 밭도랑을 치러 가게 되여 있었다. 아바이는 일행을 둘러 보더니 눈살을 찌프렸다. 일이나 할 장정들은 공예분조장네 집을 털어 고치는데 다 가고 헴이 든 사람이라군 아바이밖에 없었던것이다.

《거 기와나 벗기고 들어 내는거야 제 집식구끼리도 얼마든지 하겠는데… 거 해마다 남의 집 일하듯 언손질을 하지 말고 래일 여럿이 가서 아예 잘해 놓자구.》

철 없는 애숭이들을 데리고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소리였다.

《경영위원회에서 검열을 나온다는데 대강 흉내라도 내야지요. 자, 아바이, 이건 점심때 한잔씩…》 분조장은 술병이 서너개 들어 있는 구럭을 내놓으며 아바이의 눈치를 슬쩍 살피는것이였다.
그러자 아바이는 성을 벌컥 내였다.

《검둥개 미역 감긴것처럼 할바에야… 난 못하겠네.》 그 술병이 아바이의 기분을 거슬린것 같았다. 나는 분조장이 민망스럽게 생각되였다.

다른 한편 우리들을 햇내기라고 우습게 여기는 홍기아바이에 대한 반발심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분조장이 누가 작업조를 책임지겠느냐고 할 때 선뜻 한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분조장은 코살을 찡긋거리고 아바이는 돌등에다 딱딱 물부리를 털었다.

《서너시간 답새워 하면 될거야. 천천히 점심들을 먹고 내려 와서 오후엔 푹 쉬여도 돼.》

분조장은 마치도 자기 집 허드레일이나 시키는것처럼 미안쩍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는 최근에 와서 점점 더 사람들에게 일시키기를 어려워 했다.
어떤 날에는 그 집의 가마뚜껑을 열어 보고 며칠 푹 쉬라고 한적도 있었다. 간고한 나날이여서 분조장노릇하기가 훨씬 더 힘들었을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데리고 행수봉포전으로 향했다.

《조장형님, 오후 두시부터 새 영화를 방영한대요. 빨리 해치우고 내려 가서 영화를 보자요. 예? 조장형님.》

분조의 막냉이인 철호가 내뒤를 부지런히 쫓아오며 건늬는 말이였다.
그 애는 《조장》이라는 변변치도 않은 직위를 꼭꼭 찍어 부르며 졸라 대는것이였다. 나는 쾌히 응했다. 일손을 서두르면 될것 같아서였다.

《때가 어느 때인데 대낮에 영화소릴 해? 봄철에 하루 놀면 가을에 열흘 굶어야 돼. 주봉실이가 건달잡놈을 하나 낳았군.》

묵묵히 걸어 오던 홍기아바이가 거친 목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체, 분조장이 오후엔 놀라고 했으니까 그러지요 뭐. 저 아바인 그저 내내…》

철호는 《건달잡놈》소리에 기분이 상해서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지난해에 냈던 밭도랑은 반나마 무너져 있었다.
가래질로 깊숙이 도랑을 쳐내고 잠시 쉬는데 열두시고동이 울렸다.
분조장의 시간타산은 정확했던것이다.
새 영화를 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홍기아바이앞에서 본때를 보여 주자는 배짱이 영화에 대한 유혹을 물리쳐 버린것이였다.
나는 매 사람에게 분공을 주었다. 작업조장의 직능을 수행하는 셈이였다.
홍기아바이는 내가 시키는대로 강가에 가서 개버들을 한아름 떠왔다.
돌을 주어다 각담을 쌓고 도랑기슭에 개버들가지까지 옮겨 심고나니 저물녘이 되였다.
쉴참도 없이 점심시간에는 밥곽만 얼른 비우고 내처 일했는데도 그렇게 오래 걸린것이였다.
오늘에야 홍기아바이도 다른 소리를 못할테지, 아마 아버지를 닮았다고 할거야 하고 생각하니 자기가 대견해 졌다.
우리들은 무엇엔가 취한 기분이 되여 노을이 조잘조잘 시내물과 뛰여 노는 내가에서 손발을 씻었다. 한바탕 물싸움이라도 하고 싶은 저녁이였다.

《아니 이건 누가 부러뜨렸어? 엉?》

별안간 홍기아바이가 소리치는 바람에 우리의 기분은 비누거품처럼 꺼져 버렸다.
그의 손에는 부러진 가래자루가 들려 있었다. 아까 홍기아바이가 개버들을 뜨러 간 사이에 철호가 덤비면서 부러뜨린것이였다.
아바이의 눈에 띄울가봐 철호가 감추느라 하더니만 그예 발견된것이였다. 그 가래는 아바이가 애용하는 도구였다.

《제가 부러뜨렸어요.》

나는 철호를 대신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잘들은 논다. 한돈만큼 일하고 세돈만큼 팽개치고… 감추긴 왜 감추었어? 덜되게스리…》 우리는 모두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그까짓 가래자루 같은게 뭐길래 그다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거슬려 놓는담?

《아바이, 가래자루야 다시 맞추면 되지 않나요.》

나의 어조는 어느덧 맞갖지 않은 투로 변했다.

《이만한걸 어데서 구해? 몇년동안 손때를 먹인건데… 작업조장이 가래자루 하나쯤 하기 시작하면 철호 같은 애는 열개를 꺾어 먹구두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할거야. 당초에 철들이 없다니까.…》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아침에 작업조직을 할 때부텅 우리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감정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바이한텐 내가 그저 내내 그렇게밖엔 안 보이는가요? 계속 시비질하고 깎아 내리고… 그거야 어디 재미 없어서 일하겠어요? 못해도 욕, 잘해도 욕… 그러니까 모두들…》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 <드덜기>라고 하는군요.》

하는 마지막말은 단침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 말은 아바이 귀로도 흘러 든것 같았다. 나는 아바이의 두눈에서 퍼런 불이 붙는것을 보았다. 당장 격노한 울부짖음소리가 터져 나올것 같은 인상이였다.
아바이는 비칠거리며 점심구럭 있는데로 걸어갔다.
그는 술병을 꺼내들더니 입으로 병마개를 따던지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빈 병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까 점심에 권했을 때에는 쓴외보듯 하면서 《사람을 우습게 알거던.…》 하고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그였었다.
나는 당장 내 잘못을 후회하였다. 아버지 같은 사람 보고 내가 너무 당돌했구나! 화술을 마시는 아바이의 마음속 괴로움이 나까지 칭칭 얽어 매는듯 하였다. 그렇다고 서뿔리 용서를 빌수도 없었다. 그의 얼굴빛이 너무나 처절하여 곁에 다가서기도 어려웠다.

《아바이! 가래자루는 내가 부러뜨렸어요.》

철호가 소리쳤다. 그 애는 자기 때문에 이 일이 벌어 졌다고 생각한것이였다.
그러나 홍기아바이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날을 마감으로 아바이가 술을 끊어 버렸다는것을 나는 후날에야 알았다.
그 누구에 대해서도 칭찬할줄 모르는 채홍기아바이, 분조장이 된 오늘 나는 왜 이리도 그의 칭찬을 받고 싶어 지는것일가?
나의 아버지처럼 나도 그의 추억속에 훌륭한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할가?

김숙희아주머니

키도 작고 눈, 코, 입이 모두가 자름자름하여 《자투리》로 통하는 숙희아주머니에게도 처녀때에는 그 어떤 매력이 있었는가보다.
그의 남편이 총각때 정신없이 반했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열정은 어데로 다 새버렸는지 이제 와서는 안해를 물 건너 간 지팽이 한가지로 대한다는것이였다.
그는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에 자기네 식구까지 한구들 되는 인간들의 온갖 치닥거리를 도맡아 해주고 아침부터 한김 빠져서 일터로 나온다.
그런 그가 불쌍했던지 분조장은 지난해 논물관리를 그에게 맡겼었다. 노상 지각하는 그에게 베푸는 일종의 《배려》였다.

《아무래도 물관리공을 한사람 둬야 하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게 거나 한가지 맡아서 하구레. 집일도 짬짬이 보면서…》

분조장이 선심 쓰듯 하는 말에 숙희아주머니는 눈이 동그래서 따지듯 물었다.

《그러니까 난 옹근 한사람축에 못든다는 말이죠? <자투리>라니까 정말 재단하다 남은 쪼박지로 보는게 아니예요?》
《자투리가 어드래서요? 베개모랑 신깔개랑 만드는데 쓸모가 좀 많다구요? 공연히 생천을 자르겠소? 허허… 그건 롱담이구 논물관리처럼 책임적인 일이 어디 있겠소? 뻔히 알면서 그러누만.》

그래도 숙희아주머니는 샐쭉한 얼굴이였다.
논물관리는 쉬운것 같애도 힘든 일이다. 큰 비나 오지 않고 보급수나 제대로 들어 오면 팔짱 끼고 놀아도 아무 탈이 없을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논농사는 물농사라지 않는가?
매 배미의 물온도를 재여 보고 고온이나 저온에 상응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높이와 벼생육간의 관계, 물높이와 병해충과의 관계, 비료와 농약 살포때의 물높이조절, 장마철의 논두렁관리…
이 모든것을 과학적리치에 맞게 책임적으로 해야 하는것이다. 그렇지 않다가는 한해 벼농사를 망치고 만다.
그러나 숙희아주머니는 그렇지 못했다. 시비시약공인 나는 그와 늘 손발을 맞출수가 없었다.
비료를 뿌리려고 논고를 막아 달라는데도 제때에 하지 않아 일을 지연시키는가 하면 살초제를 치겠다는데도 물을 뽑아 놓지 않아서 최대의 약효를 낼수 있는 시간을 놓쳐 버린 때도 있었다.
암만 성을 내여도 작은 눈만 까박거릴뿐 겁이 하나도 없는 그앞에서 나는 절망조차 느끼군 했다. 나는 생각끝에 분조장을 찾아가 시비시약과 물관리를 내가 다 겸하겠다고 했다.

《그건 안돼.》

분조장은 단마디로 잘랐다.

《왜 안돼요? 난 농학준기사예요. 날 못 믿겠어요?》 하고 나는 사정하듯 달라붙었다.
《야- 참, 이제 와서 <자투리>보구 어떻게 물관리를 그만 두라고 하겠나? 그도 사람인데 장기쪽처럼 뗐다 붙였다 하는걸 그래 좋아 할텐가?》

분조장의 말을 듣고보니 난처한 일이라고 할수도 있었다.

《그래도 말해야지요. 그러다가 벼농사를 망쳐먹겠는데두요? 분조장이 말하기 딱하면 내가 하지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숙희아주머니도 농장원인데 일이 잘되는걸 바라지 안될걸 원하겠는가?
내가 물관리를 인계해 달라고 하자 그는 까부장해 진 눈길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분조장이 말하긴 하더군요.… 물관리가 그렇게 까다로운줄은 또 몰랐지요.》

그는 15년이나 아래인 나에게 언제나 깎듯이 존대를 했다. 나한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았다. 그러던 그가 감정이 격해 지나 말투까지 변하는것이였다.

《야-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농사일은 나 같은 <자투리>도 하는 일인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구나. 창훈이, 사람을 너무 업수이보지 말어. 전문학교졸업증이 뭐 박사증이나 되니? 너 같은 사람이 분조장 될가봐 겁난다야. 나 같은걸 셈에나 넣겠니?》

그는 기분이 몹시 상해서 방금 울것 같았다.
나는 더 마주 서 있기가 무엇하여 인수로를 따라 걸어 갔다.

《너무 속 태우지 말아요. 이제라도 배우면 되죠 뭐.》

뒤쪽에서 송이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돌아 보니 송이가 그와 논두렁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누가 뭐 물관리공자리가 탐나서 그러는줄 아니? 사람값에 쳐주지 않는것이 분해서 그러지.》

숙희아주머니의 새침한 목소리였다.

《그 사람이야 원래 그런걸요. 아무한테나…》
《글쎄말이야. 제가 똑 제일인줄 알지. 너무 꼬쟁이가 돼서 이담에 어떤 색시를 얻겠는지 속깨나 썩겠어. 송이, 넌 제발 저런 총각 사귀지 말어. 내가 지내보니까 남자들은 무거운 편이 나아.》
《…》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크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잘 들렸다. 인수로의 물이 전화선처럼 그들의 말을 고스란히 전해 주는것이였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구? 내가 어떻다는건가? 송이, 너는 나를 그렇게 부는구나.… 그러나 무엇을 그에게 설명할수 있으랴.
시비시약과 물관리를 겸하는것이 말처럼 쉬운것은 아니였다.
알비료생산, 분무기작업, 암모니아수시비, 같은것은 둘째 치고라도 쑥을 베여다 삶아서 식물성살충제를 만드는 일, 각종 식물의 즙을 채취하여 성장자극효과를 관찰하는 일 등 내스스로가 연구실험 삼아 해보는 일도 간단한것이 아니였다.
거기다가 백여개가 되는 논고를 일일이 돌아 보고 물높이를 조절해야 했다.
고기를 잡겠다고 논고를 들쑤셔 놓는 조무래기들을 쫓느라고 밤을 새운적도 많았다.
개구리들이 지칠줄 모르고 울어 대는 여름밤, 텔레비죤방영시간도 다 지나 밤이 이슥할무렵 무릎우에 턱을 고이고 논두렁에 앉아 있느라면 나의 뒤에 말없이 다가와 내 등을 어루만져 주는 모습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였다.

불치의 병에 걸려 가지고도 마지막순간까지 벌을 떠나지 않은 나의 아버지, 논두렁을 베고 순직한 그 아버지가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환각속에서나마 찾아 오는것이였다.
농가들의 돼지우리와 하수도의 물이 논으로 흘러 들도록 작은 도랑들을 째고 비 오기전에 논두렁대책들을 잘해서 아까운 논물이 한지에 버려 지는 일이 없도록 일기예보를 명심해 듣고… 이 모든 일들은 나의 어린 망막속에 새겨 진 아버지의 일과였고 오늘날 나의 일과로 되였다.
그렇게 애 쓴 보람이 있어 지난해 벼농사는 괜찮게 되였었다. 실한 벼이삭이 배미마다 가득 차고 내 마음속에서도 이삭이 여물어 갔다.
그런데 예상수확고판정결과는 시원치 못했다. 다른 분조와 도토리키 대보기였던것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훨씬 잘된것 같았는데 수판과 전자수산기에 나타는 수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수자에 이르지 못한것이 죄스러워서 벼이삭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가, 아니면 자기네가 안고 있는 낟알의 무게를 낱낱이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운가. 벼바다가 굼니는 소리도 나에겐 아프게만 들렸다.
나는 기술원을 찾아 갔다. 그는 평뜨기한 생중량과 물기를 빼낸 건조중량, 그에 따르는 포전별, 필지별 수확고가 상세하게 적힌 예상수확판정종합표를 보여 주었다.

《딴 분조보다 특별히 월등하진 못해도 어쨌든 수확고는 3분조가 제일 높아. 긍지를 가지라구.》

나는 그의 말을 등뒤로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예상판정결과가 씌여 진 속보판앞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숙희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재수 없는 사냥군 곰 잡아도 열이 없더더니 거기서 그 격이 됐수다레.》

나는 울컥해 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우리 분조에선 암만 뛰여 다녀야 짚신에 국화 그리기예요. <조절위원회>가 동작했겠는데 뭐.》

그는 입속말로 쏭알거리더니 크라포트종이로 표지를 해씌운 두터운 책을 읽으며 아실아실 걸어 갔다. 그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야 어떻게 되든 그 녀인의 가슴속에는 물관리공자리를 내놓던 여름날의 그 불쾌감만이 옹이처럼 박혀 있는 모양이였다. 야속하였다. 정말 그는 인간자투리인가? 생각하니 가슴만 답답해 졌다.
올해의 물관리를 대담하게 맡겨 볼가 생각을 했으나 인차 머리를 젓고 말았다.
내 체면을 세우고 그의 환심을 얻자고 벼농사를 모험할수는 없다. 물관리는 올해에도 내가 할것이다. 언젠가는 그도 리해할 때가 있을것이다.

주봉실아주머니

주봉실은 차영세분조장의 고삐나 같은 존재였다. 모내기지원자들의 식사보장, 단오날의 분조별료리경연, 상가집이나 잔치집의 부조에 이르기까지 분조앞에 제기되는 일체 대소사를 전부 주봉실이 주동이 되여 좌지우지하였다. 어쩌다 말다툼이 일어 나거나 시비거리가 생겨도 역시 주봉실이 나서서 관계를 조절하였다. 그래서 《조절위원회》라는 말도 생겨 난것이였다. 숙희아주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한 《조절위원회》소리를 듣자 나는 곧바로 주봉실의 집을 찾아갔다.
예상판정보조성원으로 동원되였던 그를 만나 씨원히 알아 보고 싶어서였다.
전기교차조직으로 우리 분조는 야간에 벼탈곡을 하고 그날 낮에 쉬고 있었다.
그 집 뜨락에 널어 놓은 강냉이방석우에서 울긋불긋한 수닭 한놈이 한바탕 낟알을 쪼아 먹고 있었다. 나는 조그만 돌멩이를 그놈에게 던졌다. 야단스러운 꼬댁소리에 부엌문이 열렸다.
걷어 올린 팔뚝이 시뻘겋게 익은 주봉실이 나왔다. 이어 엄살스러운 목소리가 반색을 했다.

《분조장님! 마침 창훈이가 옵네다레. 어서 들어 와요. 어서요.》

그러자 마루우에 차영세분조장이 나타났다.

《오- 창훈이! 금방 널 찾으러 가자던 참이야.》

나는 별스레 반가와 하는 그들의 손에 이끌리여 집안에 들어 섰다.
노란 장판방에 알른거리는 상이 놓였는데 하얀 송편접시와 노란 콩나물, 시뻘건 양념을 바른 두부그릇이 먹음직스러웠다.

《올여름에 네가 제일 혼났지. 분조 벼농사는 사실 너 혼자서 한거나 같애. 자, 어서 들자구.》

분조장은 나의 팔을 끄당겨 상앞에 앉혔다.

《이건?!… 무슨 잔치라도 하는가요?》

나는 어리둥절해 져서 이렇게 물었다.

《먹는 모퉁이에 들면 먹어 주면 되는것이고 우는 모퉁이에 들면 울어 주면 되는거야. 자, 들자니까.》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년장자인 분조장이 각근히 권하는데 마다하기도 딱해서 할수없이 마주 앉았다.

《오늘저녁 야간탈곡 나가기전에 저녁식살 여기서 다같이 하자는거야. 한상에 둘러 앉는 계기를 더러 마련해야 사람들이 자연히 더 가까와 지거든.… 다를 혼났지. 죽을 먹구 농사 짓느라구… 그래서 이를테면 가을잔치를 차린 셈이지. 그저 농민은 이 가을을 믿고 살지 않겠나.》

분조장은 코안이 매워 오는지 손등으로 코날개를 이리저리 문대였다. 나도 눈어방이 후끈해 졌다.

《난 예상수확고판정이 잘못된것 같아서 왔댔어요. 어디서 오차가 생기던가 면적이 잘못된것 같아서요. 분조장동지는 뭐 다르게 생각되는게 없나요?》

나는 궁금하던것을 물었다. 분조장이 빙그레 웃었다.

《면적? 그래, 면적도 좀 지고 넘어 갔지. 천수답에다 콩을 심었으니까.… 예비를 좀 찼다가 래년엔 박막이랑 비료랑 지원로력을 욕심껏 당겨 쓰자는거야. 창훈이가 수고한 덕에 그래도 수확고는 1등이니 얼마나 좋아. 내 그래서 자넬 이렇게 따로 찾은게야.》

그는 나의 어깨우에 뜨끈한 팔을 얹었다.

《?!…》

나는 그제서야 이 자리가 깨끗치 못한 자리임을 알아 차렸다.

《아이구, 말도 말아요. 분조장이 예상수확고를 될수록 낮추 잡아야 한다고 해서 그래도 하느라고 내가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요? 다 분조농사 때문에 그런짓을 했지 열이 동이만 해도 그 노릇은 못하겠습디다. 10년 감수했다니까요.》

부엌새문가에 선 주봉실이 진저리치듯 머리를 흔들며 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제서야 모든것을 깨달았다. 예상수확판정에서 눈속임을 하고 콩을 심은 천수답면적을 논벼면적으로 잡은것이였다.
삽시에 울분의 급류가 가슴속의 골짜기들에서 터져 나오는듯 했다.

《이럴수 있는가? 쌀 한알이 금싸락 같은 이때에 이게 무슨짓인가? 사람들이 풍년소식을 전승소식처럼 기다리고 있는데… 낟알때문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농민의 량심을 가지고 이럴수 있는가?》

이런 말들이 출구를 찾아 소용돌이쳤으나 한마디도 번질수가 없었다.
박막이 없어 애가 마르던 봄, 비료가 모자라 속이 타던 여름, 일손이 딸려 힘들던 나날들이 말문을 막아 버린것이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 섰다.

《분조장동지! 일이 잘된것 같지 않아요. 래년에 우리가 좀 더 고생을 하드래도… 우리야 농민이 아닌가요. 이제라도 제대로 해놓으면 좋겠어요.》

분조장과 주봉실의 얼굴이 컴컴해 졌다. 그들을 뒤에 남기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의 진정과 땀이 모욕 당한것이 분하기도 했고 분조장의 인정을 외면하는 내가 모질어 보이기도 했다.
광주리속에 들어 가 강냉이눈을 쪼아 먹던 수닭이 나를 보자 흠칠했다. 먹이만을 찾아서 아무데고 들어 가는 그 짐승도 어떤 죄의식을 느낀것인가? 음식상앞에만 둘러 앉으면 사람들이 더 가까와 진다고? 농민은 그 멋에 가을을 기다린다고? 그래야 합심하여 일을 더 잘하리라고?…
나의 아버지는 길가에서 주은 강냉이 한이삭도 탈곡장창자로 가져 갔었다. 콩청대 한번 벌려 놓을줄 몰랐어도 사람들은 한집안식구처럼 다정하였고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였다.
지금도 홍기아바이가 종종 하는 소리처럼 《사람답게 산》 나날이였다. 알곡생산에서 1등을 하고 분조전원이 농민휴양을 떠나던 기쁨, 풀베기가 한창인 삼복철에 얼음쪼각이 둥둥 떠도는 오이랭국동이를 가운데 놓고 피여 오르던 웃음소리…

처녀들은 땀에 뜬 아버지의 잔등에 부채질을 해주고 녀인들은 가둑나무고깔에다 딸기를 따오고… 마치 아버지가 랭국동이를 들고 온게 아니라 사막의 생명수나 길어 온것처럼 떠들어 댔었다. 그속에 끼운 나도 멋 모르고 좋아 했다.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처럼 그때의 정경은 뇌리에 깊이 새겨 졌다. 그런데 오늘 아무리 어렵기로서니 허위와 거짓의 검은 붓으로 그 순결한 화폭에 먹칠을 할수 있단 말인가? 땅과 농민은 나라가 디디고 선 터전이 아니겠는가? 딛고 선 땅이 거짓이라면 아무리 거대한 탑도 졸지에 무너지고 말것이다.
그 집에서 나와 동구길로 걸어 가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꼭 바로 잡아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이때 골목길에서 송이가 급히 걸어 나왔다. 그는 붉게 상기된 나의 얼굴을 곁눈으로 스쳐 보고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송이동무, 어데 가오?》 내가 물었다.
그는 얼핏 나를 스쳐 보더니 입술을 감빨고나서 이렇게 물었다.

《혹시 주봉실아주머니네 집에 가지 않았댔어요?》
《갔댔소. 이자 좀전에… 왜 그러오?》

송이는 뜻밖이란듯 나를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그랬댔군요. 난 그래도 동무만은 그런데 섞이지 않았을줄 알았는데… 거짓말도 여럿이 함께 하면 정말처럼 되는가요? 참 유리한 <철학>이군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나를 믿었댔다는 그 말은 고마왔지만 거짓말《철학》에 대한 그의 비웃음은 나를 아프게 자극하였다.
그는 내가 주봉실이네와 한장단에 놀아 난것으로 넘겨 짚은 모양이였다.
거짓말도 여럿이 함께 하면 정말처럼 되는가고? 그는 분명 정초에 있었던 일을 념두에 두고 말한것이였다. 그 추억은 나에게도 몹시 아픈것이였다.

진출자 김송이

그는 도소재지의 한 양복점에서 재단사를 하다가 우리 농장에 탄원진출한 처녀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것이란 성격이 발랄하다는것과 행동이 민첩하다는것, 처녀들 고유의 수집음이나 애교보다는 사내애들처럼 당돌하고 여무진데가 있다는것뿐이였다.

《송이동문 왜 농촌진출을 결심했소?》

언젠가 나는 그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적이 있었다. 그는 전혀 예상밖의 대답으로 나를 놀래웠다.

《텔레비죤과 신문에 소개되고 싶어서요. 재단사로 이름을 날리기는 무척 힘들거든요.》
《신문에 난 이름을 유지하기는 더 힘들게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글쎄, 청년신문은 고사하고 분조신문에 나기도 보통 힘들지 않겠어요.》

그는 속보판을 《분조신문》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농장처녀들과 인차 어울렸고 나하고도 무랍없이 롱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였다.
그는 어느 경우에도, 누구앞에서도 주눅들줄 몰랐다. 오히려 수세에 몰릴수록 탕탕 튀여 났다.
어느 날 로동부원이 우리 일터에 온적이 있었는데 송이에게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었다.

《예, 있습니다.》

송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결혼식할 때 보십시오.》 하는것이였다.
로동부원이 돌아 간 다음 내가 정말인가고 사실여부를 캐여 묻자 송이는 바스러지게 웃었다.

《영양단지를 빨리 찍어야겠는데 우리한테 오래 머물면 다른 조한테 질가봐 그랬어요. 저 사람은 처녀들한테만 오면 쓸데없이 말이 길어 지더군요.》

나는 아연해 져서 영양단지기계를 부지런히 눌러 대는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진짜 애인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어쩌자구 그러오?》 하고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창훈동무가 보증하면 되지 않아요?》 라고 하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구애도 느껴 지지 않았다.
그와 한조가 되여 재료를 배합해 주고 이겨 주는 일을 하던 나는 어느새 그의 성미에 감염된듯 하였다.

《나한테 애인이 없다면 송이동무와 친해 볼텐데 아쉽구만.》

습관되지 않는 롱말을 던진 나는 저도 모르게 목덜미가 달아 올랐다.

《파차일반이군요. 호호…》

송이가 또 웃었다. 도대체 누가 정말을 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것인지 우리는 서로 알수 없었다. 이렇듯 아무 허물도 없던 우리들사이가 갑자기 멀어 진것은 비료전표사건때문이였다. 그것은 년초에 있었던 일이였다. 부족되는 비료를 진거름으로 보충하기 위한 생산경기가 벌어 졌을 때였다.
나는 집주변과 동네에 진거름원천이 떨어 지자 달구지를 끌고 읍거리로 가자고 제의하였다.
처녀들이 뜨아해 하였다. 부끄럽다는것이였다.
하긴 견직공장과 피복공장은 처녀공장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처녀들이 씨글씨글한 곳이다. 바로 그 공장안에 생산해 놓은 진거름이 있었던것이다.

《그럼 처녀들은 남아서 여기 있는데껏 원천을 찾아 보아라. 읍에는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가지.》

분조장이 이렇게 조직사업을 하자 처녀들은 환성을 질렀다.

《공장처녀들은 쌀밥을 먹지 않는대요? 별게 다 부끄럽겠어요.》

오히려 송이가 이러며 다른 애들을 나무랐다.
송이는 그날 달구지를 끌고 나와 함께 읍에 다녀 왔다. 될수록이면 눈길을 수평방향보다 아래쪽에 주면서 견직공장후문으로 들어 갔었다.
붉고 푸른 외투들과 멋쟁이옷들, 부드러운 색갈의 솜옷들이 앞으로 뒤로 흘러 가고 흘러 왔다. 맵시 있는 손가방들, 반들거리는 녀자용구두들, 뽀얀 긴 양말에 싸인 날씬한 다리들이 우리들을 포위하듯 끝없이 다가오고 물러 갔다.
그러나 송이는 조금도 위축감을 느끼지 않았다. 돌아 오는 길에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창훈동무는 이제야 활기가 도는군요. 아까는 막 눈건사도 제대로 못하는것 같더니… 부끄러워요?》
《동문 아무렇지도 않았소?》

내가 이렇게 되묻자 송이는 생긋이 웃었다.

《우리도 옷만 갈아 입으면 다 같은 사람인걸요. 그 처녀들도 현장에서야 별별 험한 일을 다 할텐데 공연히 주눅이 들 리유야 있겠어요? 오히려 뻐젓하지요.》

송이는 안 그러냐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돋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는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숙소집에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 읍으로 갔다.
그날 저녁녘이였다. 속보를 쓰고 있는데 차영세분조장이 싱글벙글하며 다가왔다.

《이것 보라구. 송이가 이틀사이에 비료 5t을 끌어 왔어. 그 애 삼촌이 자재공급소 비료공장주재 인수원이라는구만. 아, 글쎄 처녀가 겁도 없지. 그날 읍거리에 다녀 와서 밤에 혼자서 거길 갔댔대. 자네가 송이랑 비료공장에 좀 다녀 오라구. 차편까지 구해 주겠다구 했다니까 호송만 해오면 된대.》

분조장은 시뻘건 도장이 여러개 찍힌 비료전표를 나한테 주고 어데론가 사라졌다.

《에에- 이젠 구접스럽게 읍에까지 진거름 실러 보내지 않아도 되겠군. 처녀들이 질색을 하더니…》 그가 중얼거린 말이였다.

나는 비료전표를 보는 순간 자신의 렬등감을 어쩔수 없이 느꼈다. 견직공장구내에서 느끼던 감정하고도 같지 않았다. 태연한척 하던 송이의 가슴속에 얼마나 큰 모멸감이 숨어 있었는가를 깨닫자 모욕 받은 자존심으로 속이 메슥거렸다.

《고달프게 아 쓰지 않아도 1등은 우리거구나.》
《우리한테도 송이 같은 힘을 가진 애가 있었으면 좋겠지?》
《앞으로도 송이 삼촌이 톡톡히 도와 줄수 있겠지.》

한입 건너 두입 건너 어느새 퍼진 비료전표이야기는 각이한 반향을 일으켰다. 거기에는 그늘이 비껴 있었다. 자기들의 사회적지위에 대한 야릇한 렬등의식, 행운에 대한 유혹, 투쟁에 대한 체념… 나는 그 모든것에 반발하듯 쉬는 날 사회작업으로 모든 청년동맹원들이 읍거리에 가서 남아 있는 진거름을 실어 오도록 포치사업을 했다. 나는 작업반 청년동맹비서였던것이다.
그런데 쉬는 날 모이자고 약속한 장소에는 송이 혼자만 나와 있었다. 다른 처녀들은 국립희극단의 순회공연을 보려 읍에 갔다는것이였다.
송이가 부비서의 《권한》을 행사하여 그것을 허락했다는것을 알았을 때 나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좋- 소! 이 문제는 조직적으로 해결합시다.》

송이는 아연해 진 얼굴로 홱 돌아서 걸어 가는 나를 지켜 보았다.
나는 청년동맹회의를 열었다. 송이의 비조직적이고 비사회주의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이 벌어 졌다. 놀라움, 실망, 수치감과 좌절감이 그의 얼굴에 글로 쓴듯이 나타났다가 푹 숙인 고개밑에 가리워 지고 말았다. 그의 몸부림은 나에게도 충격적이였으나 나는 랭정하려고 애 썼다.
회의를 결속하게 되였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자신에게 이르듯 한마디한마디에 힘을 주어 하고 싶던 말을 하였다.
원쑤들은 우리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면서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들이 서로 자기밖에 모르는 짐승무리처럼 변할것을 원하고 있다.
우리 분조가 비료 5t을 가져다 놓고 웃음 지을 때 바로 그때문에 더 힘들어 진 분조가 있다는것을 잊지 말자. 이것을 모른다면, 모르는체 한다면 우리는 결국 원쑤를 도와 주는것으로 된다. 붉은기를 지키는 우리의 투쟁은 결국 인간의 량심을 지키는 투쟁이다. 온갖 거짓과 허위를 배격하고 진실한 넋과 순결한 량심으로 붉은기를 휘날려야 한다. 이 투쟁에서 우리 청년들이 앞장서자! 내가 한 말의 골자는 이런것이였다.

회의가 끝나 모두가 헤여져 갔으나 송이는 움직일줄을 몰랐다. 나는 내가 너무 가혹했다는 자책도 없지 않았으나 달리할 말도 없었다.
전자벽시계의 초침소리만이 가늘게 채깍거리는 방안에는 우리 두사람의 침묵으로 전등빛마저 어두워 진듯 하였다.
나는 먼저 밖으로 나왔다. 숨이 가빠서 앉아 있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를 위로해야 하지 않을가? 어떻게? 무슨 말로?… 송이는 여전히 안 나온다. 저안에서 밤을 샐 작정인가?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그는 그때에야 천천히 일어 났다.

《청년동맹비서동무! 고마워요. 조직적으로 내 문제를 도와 주어서… 개별적방법으론 저를 이길 자신이 없었는가 보지요?》

그의 찌르는듯한 눈길이 나의 얼굴에 날아 와 박혔다. 이렇게 망신 주어야 씨원한가요? 하는 속대사가 강하게 울렸다. 하나를 통해 열을 치려고 한 나의 뜻을 그가 모른단 말인가? 섭섭했으나 설명하기는 싫었다.

《이젠 가지 않겠어요? 텔레비죤소설시간이 지나가겠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송이의 어조는 다시 태연해 졌다. 그러나 눈빛은 결전을 치르고 난듯 초연했다. 나는 자기를 이겨 낸 그를 감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가기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는 대답했다. 청년학교문을 나서며 송이는 손바닥을 털었다. 줌안에 쥐고 있던 찢어 진 종이쪼각들이 밤나비처럼 이리저리 날아 갔다. 그것은 비료전표였다.
나는 나의 심장이 그렇게 갈가리 찢겨 져 버린듯 했다.
우리는 나란히 마을로 향했으나 헤여질 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가 매끈매끈한 편지봉투의 감각을 느꼈다. 아까 통신원한테서 받아 넣은것이였는데 송이한테 온 편지였다.
그의 숙소집앞에 이르렀을 때에야 나는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아까 우편통신원이 준거요.》

송이는 달빛에 겉봉을 읽어 보고 솜옷 안주머니에 넣더니 《잘 가세요.》 하고는 들어 가 버렸다.
나는 어쩐지 서운했다. 누구한테서 온 편지인가 물어라도 보았을걸… 뚱딴지같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겉봉에는 《신의주에서 벗으로부터》 이렇게 씌여 있었던것이다. 혹시 애인한테서 온건 아닐가? 부디 아니였으면… 하고 바라는 나를 깨닫자 가슴이 별스럽게 뛰였다. 그는 나를 원망했을테지. 얼음장같이 찬 사내라고 욕했을테지. 방금전 같이 걸어올 때 따뜻한 말이라도 한마디 했을걸…
나는 그의 숙소집을 자꾸 돌아 보며 걸었다.
아, 나에게도 피 더운 심장이 있다는것을 송이가 알아 준다면!…

그때부터 그는 나를 멀리하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변함없이 유쾌하게 섭쓸렸으나 나와는 꼭 간격을 두고 《청년동맹비서동무》로 대하는것이였다. 그렇다고 그를 나무랄수는 없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개별적방법으론 저를 이길 자신이 없었는가 보지요?》 하고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그랬다. 나는 그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마 그것은 분조장이 되여서도 같을것이다.
옳은것이 그른것을 부정하고 타매하는것은 응당한것이지만 그 옳은것이 일반화되기까지는 어차피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것이다. 그 괴로움도 사람을 가꾸어 주는 생활의 학년이라고 나는 자신을 위안하였다.
복잡다단한 생활의 바다를 나는 진실의 삿대를 짚고 건너 갈것이다. 그가 농장원이든 분조장이든 사람들앞에, 생활앞에, 땅앞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실한 사랑을 받을것이다.

주길손필지

포전별 토양분석과 그에 따르는 퇴비반출도 끝냈다. 로동행정규률을 엄격하게 세웠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해마다 매 분조가 돌려 가며 부치는 《주길손필지》 2천평이 제일 문제다. 올해에는 우리 분조가 부칠 차례가 된것이였다. 물을 대는 족족 새여 버리는 그 필지는 물대기도 모내기도 김매기도 힘든 《속상한 필지》이기도 하다. 주인이 없이 해마다 돌려 가며 부친다고 《불쌍한 필지》, 일하기가 말째다고 《속상한 필지》라고도 불리운다.
이 필지옆에는 그리 크지 않은 늪이 있고 늪옆으로 지나간 큰길을 넘어 서면 천양천이라 부르는 대령강의 지류가 흐른다.
물을 가까이 두고서도 주길손필지는 해마다 갈증에 시달리는것이다.
나는 늪을 파내여 물이 새지 않게 흘깔이를 하는것이 어떻느냐고 작업반에 제기하였다.

《좋지. 한데 올해는 반에서 도와 줄 힘이 없구만. 천양천소형발전소건설이나 끝난 다음에 보자구.》

반장이 타이르듯 하는 말이였다. 곁에 있던 4분조장이 비린 청으로 소리를 질렀다.

《여 3분조장, 이도 안 나온게 뼈다귀추렴할 생각은 그만 두고 래년에 우리한테 넘기라구.》
나는 더 우길 용기를 잃고 작업반실에서 나왔다. 오는 길에 차영세아저씨의 집에 들렸다.

《… 한해 그렁그렁 지나가면 래년에는 딴 분조가 부치게 되구 그 다음엔 5년만에야 다시 우리한테 돌아 오는데 공연히 힘 빼지 말라구. 그 일이 아니래두 분조장은 열두번 곤두박질을 해야 돼. 반공동일에 손발 걷고 나섰대야 우리만 손해야. 사람들을 아끼라구.…》

그는 이런 말로 《조언》을 주는것이였다.
나는 그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잡아 끄는것을 가까스로 떼여 놓고 그 집을 나섰다.

《내가 또 욕 먹을 소릴 한게 아닌가?》

나의 얼굴빛을 보고 그가 게면쩍게 하는 말이였다. 나는 그저 씁쓸히 웃어 보였다.
홍기아바이를 찾아 갔으나 집에 없었다. 어디에 갔는지는 안주인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스적스적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공동으로 하는 일에는 적당히 나서야 한다고? 그런것이 집단생활규범이라면 당초에 선구자나 혁신자라는 말은 왜 필요한가? 제일 낮은 키를 기준으로 모든 일을 설계한다면 세상은 진보할 대신 아득한 태고적 석기시대로 후퇴해 가고 말것이 아닌가?
왁새식굴착기를 실은 견인차가 두대씩이나 지나가며 먼지를 들씌웠다. 새로운 설비와 기술을 앞세우고 사람들은 저렇듯 부단히 앞으로 달리고 있는것이다.
저 운전수가 나의 형쯤 되였으면! 그래서 꼭 하루만, 아니 단 한시간만이라도 늪을 파주었으면!… 그러자 문득 밤나비처럼 흩날리던 비료전표가 생각났다. 그래! 아무에게나 원칙은 하나인것이다. 내 힘으로, 분조의 힘으로 해보자. 발걸음은 어느새 늪을 가까이하고 있었다.
늪가 동뚝우에서 담배불 같은것이 반짝거렸다. 가까이 가보니 홍기아바이였다. 어둠속에 오금을 꺽고 앉은 그의 모습은 정말 드덜기 같았다.
?
《여기 나와 계신걸 집에 찾아 갔댔군요.》

나의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턱을 쳐들었다. 왜 그러느냐는 표정이였다.

《이 늪을 파서 주길손필지에 깔아야겠는데 그 의논을 좀 하려구요.》
《작업반에서 좀 도와 주겠다던가?》

그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했다.

《하긴 도와 줄 겨를이 없을거야.》
《우리끼리 파야지요. 인원이 25명이나 되는데…》

나의 말에 아바이는 킁킁 코소리를 내였다.

《사람이 백명이면 사정두 백가지야. 구실은 오백가지두 더 되지 않으리. 동원이 될가?》
아바이는 눈을 지릅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동원 안되면 나 혼자서라두 해야지요.》
《틀렸어!》

갑자기 아바이가 소리쳤다.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분조장이라는게 그렇게 궁리하면 되나? 어떻게든 사람들을 궐기시키고 감동시켜서 일이 성사도되록 할 생각은 않구. <나 혼자서라두 해야지요>가 뭔가? 물관리두 혼자, 시비시약도 혼자, 늪 파는것두 혼자… 그럼 자네 혼자서 다 해보게나.》

아바이의 목소리는 거칠었으나 나는 거기서 뜨거운 진정을 읽었다.

《아바이, 한두평두 아니구 2천평이나 되는걸 해마다 배구뽈처럼 여기저기 넘겼으니 얼마나 숱한 낟알을 잃었나요? 아바이도 말씀했지요? 우리 아버지하고 일할 땐 사람답게 살았다구요. 농민이 낟알을 버리고 땅을 천대하면서 저만 편안하게 살아 가지고야 그게 무슨 사람답게 사는거겠나요?》

나는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열변을 토하였다. 아바이는 담배불을 비벼 끄고 돌등에다 딱딱 물부리를 털었다. 그는 어떤 내심의 충격을 느낄 때면 그렇게 행동하군 하는것이였다.
그는 천천히 내앞으로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나를 덥석 업는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렴 왕대밭에 왕대가 나겠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분명해. 리정직의 아들답단 말이야. 하하하…》

아바이는 머리를 젖히고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아버지품에 안긴것 같았다. 온갖 시름이 다 날아 간듯 하였다.

《아바이, 난 두려워요. 꽤 해낼수 있을가요?》

나는 철 없는 어린애 심정이 되여 아바이에게 물었다. 그의 고무와 격려를 받고 싶어 졌던것이다.

《거야 분조장에게 달렸지. 모두 자네를 믿구 분조장으로 선거했는데 구실을 못하면 안되지. 난 자네가 꼭 이 필지를 개간할줄 알았네. 그래서 찬성했어.》
《예? 찬성했다구요?》

나는 하마트면 이렇게 소리칠번 하였다. 분명히 반대했을줄 알았던 홍기아바이가 나를 찬성했다니 놀랍기만 하였다.

《뭘 보구 알았습니까? 제가 여길 개간하리라는걸.》

내가 묻는 말에 아바이는 또 킁킁거렸다.

《왜 몰라? 하는 잡도리를 보면 다 알지. 재목을 보면 기둥감인지 서까래감인지 제꺽 아는거나 같은 문제야.》
《난 사실 아바이가 저를 반대한줄 알았댔습니다. 용서하세요.》

나는 진심으로 사죄하였다. 나를 그렇듯 높이 생각하고 있는 아바이를 욕되게 여긴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아바이는 흠- 하고 소리없이 웃었다.

《아바이,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 아직도 사람들이 무얼 보고 저를 찬성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아야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는데…》

아바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찬성했느냐구? 우량종이 돼서 그랬지. 앞으로 좋은 결실을 우리한테 가져다 줄것이라구 믿어지더군. 농장의 앞날을 맡길만 하다고 본거야. 숙희두 주봉실이두 송이두 다 그렇게 말하더구만. 자넨 리정직의 아들이 아닌가. 젊은 자네가 아버지처럼만 일한다면야 앞으루 우리 농장이 얼마나 좋아 질텐가. 그걸 보구 찬성했다네.》
《!…》

아, 가슴이 벅차서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들은 어려운 오늘보다 희망찬 래일을 생각하고 있구나. 봄날에 심은 한알의 씨앗에서 풍성한 가을의 무르익은 열매를 그려 보는 농민의 소원처럼… 젖먹이를 키우며 름름한 장수를 소원하는 어머니의 꿈처럼… 천날을 지새고 만날을 뛴들 다함이 있을가. 이 사람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이라면 내 산도 허물리라. 사품치는 강도 막으리라. 이 순간 나에겐 모든것이 가능하게 생각되였다.

《이걸 파내서 깔면 물이 새지 않아서 좋아, 거름이 되니 좋아, 천양천을 끌어 들이면 저수지가 생겨, 거기다 양어까지 하면 꿩 먹고 알 막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격이 아닌가. 이놈의 늪만 보면 늘 군침이 돌댔는데 자네가 하겠단 말이지. 이왕이면 판을 크게 벌리자구. 힘들거 없어. 군대들처럼 냅다 밀면 돼.》

아바이는 금시 10년은 더 젊어 진것 같았다.
나는 지난해에 물길공사를 벌리던 군인들을 생각하였다. 우렁찬 목고소리, 바위를 까내는 메질소리, 억수로 쏟아 지는 비발속에서 군관도 전사도 한덩어리가 되여 질통을 지고 달리며 진창길에 쓰러지며… 그속에서도 혁명가요를 높이 부르던 군인들의 모습이 청동의 군상처럼 우렷이 떠올랐다.
군인과 농민은 서로 공통점을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농민들은 마땅히 군인성격을 지니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우리도 군대처럼 살아야 한다.

《주봉실이가 좋아 하겠군. 늘 주길손이라는 이름을 떼버리자고 하더니…》

아바이가 추연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나는 그제서야 주길손필지의 래력을 생각하였다. 원래는 모래기가 많아 《모래틀》이던것이 토지개혁때 주길손농민이 분여 받은 다음부터 《주길손틀》로 불리웠다는것을 나는 어릴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 주길손이가 바로 주봉실의 아버지였었다.
주길손농민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일시적후퇴때 피살 당하였다.

《엊그제 주봉실이가 하는 말이 <올해엔 우리 분조가 그 땅을 부칠 차례인데 땅구실을 바로 할가요? 창훈이가 분조장을 하면 일이 바로 될것 같아서 찬성하긴 했는데…> 하더군. 사람 보는 눈은 다 같은 모양이지?》

나는 뜨거운것이 혈관으로 흐르는것 같았다.
이 땅의 첫 주인이 되여 감격에 울고 환희에 웃던 수백수천의 주길손이들과 그 후대들이 나를 지켜 보는듯 하였다.
《주길손필지》- 반세기이전부터 씌여 지기 시작한 이 고유명사가 절대로 《불쌍한 필지》로 바뀌여서는 안될것이다. 몇세기가 흘러 가도 《주길손필지》로 불리우도록, 애국농민 주길손이 대대손손 추억되도록 기어이 개간하고야 말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어둠속에서 인기척이 났다. 차영세였다. 그는 마른 장작을 한단 안고 있었다.
그는 장작개비들을 고깔처럼 세워 놓고 불을 지폈다. 으시시하던차에 불이 반가왔으나 무슨 영문으로 그가 장작을 가지고 나왔는지는 알수 없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늪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어쩐지 마음이 긴장해 졌다.

《내 아까부터 아바이랑 하는 얘길 다 들었수다.》
《…》

모닥불가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바이, 난 종자를 닦아 먹은 놈이나 꼭 같았지요. 내가 분조장을 좀 더 했으면 아마 사람들을 종자도 안 남기고 다 망쳤겠지요? 우량종이구 뭐구… 그래서 벌을 받았지요. 천벌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의 저주를 받은 셈이지요.》

그는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씹어 뱉듯이 괴롭게 중얼거렸다.

《차영세, 이 사람!》

문득 홍기아바이가 그의 손목을 턱 잡으며 뜨겁게 불렀다.

《홍기아바이!》
《분조장!》
《영세아저씨!》

우리 세사람의 웨침소리가 모닥불 피는 동뚝우에 시처럼 울렸다. 우리의 머리우에선 찬란한 별바다가 아름다운 밤의 노래를 안고 미소하고 있었다.

우리 분조원들

늪바닥파기가 거의 끝나갈 때 다른 분조장들이 자기네 로력을 데리고 도와 주러 왔다.

《이 친구 성가스럽게는 노는구만. 어디 두고 보자, 도와 달랄 때가 있겠지 했는데 죽어라 하구 가만 있구만. 할수 없이 자진해 왔네.》

4분조장이 비린 청으로 떠들어 댔다.

《저수지가 생기면 우리 분조 논도 그 덕을 볼텐데 가만 있을수가 있어야지?》
《난 영양단지재료가 탐나서 왔어.》

분조장들이 저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일은 쑥쑥 자리가 나고 수로공사와 양어장건설, 천양천물을 끌어들이는 물길공사까지 불이 번쩍 나게 해치웠다. 마침내 저수지가 생겨 나고 맑은 생명수가 흙깔이를 한 《주길손필지》를 적시기 시작했을 때 주봉실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감탕흙을 지고 뛰여 다닌 송이의 눈가에도 맑은것이 어려 있었다.

《난 말이예요. 일 잘하고 마음 고운 사람들은 제일 값지고 훌륭한 옷을 입고 일하기 싫어 하고 마음이 검은 사람들은 누데기를 걸쳐야 한다는 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난 우리 분조 사람들에게 제일 아름다운 옷을 내 손으로 지어 입히겠어요.》

송이는 동화와 같은 꿈에 잠겨 이렇게 말했다.

《체, 그럼 내가 제일 나쁜 옷을 입겠구나.》

철호가 볼멘소리를 했다. 제 스스로가 자리를 락후한 대렬에 놓는것이 우스워서 모두들 웃었다.

《그럼 제일 선참으로 분조장옷을 지어야 할걸.》
《좋은 옷을 입고서야 일 잘할 재간이 있나?》
《송이, 너도 이젠 농촌처녀가 다 되였다야. 처음 나왔을 땐 선녀 같더니…》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떠들어 댔다.

《자, 쓸데 없는 말장단들은 그만하고 작업총화를 지읍시다.》

내가 소리쳤다. 말소리들이 칼로 자른듯이 끊어 졌다. 순간 나는 서운함이 비낀 송이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흙탕얼룩이 간 바지, 감탕투성이 로동화, 누빈 솜옷우에 진 질통, 벌바람에 탄 얼굴…
문득 분조에 처음 배치되였을 때의 송이가 그 모습우에 덧놓였다.
반짝거리는 하얀 구두, 허리선이 잘룩한 양복저고리, 부드러운 머리다발속에서 빛을 뿌리던 빈침, 향기가 풍기는듯 하던 흰 살결…
서글퍼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흉벽을 긁어 내렸다. 왜 그럴가? 양복점 재단사시절이 그리워 진걸가? 농장에 탄원한것을 후회하는걸가? 그러자 내 마음까지 이상하게 쓸쓸해 졌다.

왕가물이 휩쓸었지만 우리 분조 논배미들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츠렁츠렁했다.
파란 채양모자를 쓴 물관리공 숙희아주머니는 그 논배미들을 다람쥐처럼 뱅뱅 잡아 돌았다.
그가 농업전문학교 물관리학교재를 뜬금으로 외우다싶이 해가지고 나타났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던가? 더구나 농기구공장에 다니는 그의 남편이 수지로 만든 자동물고를 가지고 안해와 함께 찾아온데는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자투리를 면해야겠다고 매일밤 이걸 읽는데 우리 광철이 아버지가 <여보, 당신 이제야 옛날 매력이 다시 살아 나는구만.>. 이러지 않아. 그 말이 얼마나 눈물나게 고맙던지 훌쩍거리고 울었다니까. 시집 온 뒤로 이제야 사는 재미를 아는것 같애.》

이것은 숙희아주머니가 자기또래 녀인들앞에서 한 《다시 살아 난 김숙희의 매력》의 한 대목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더는 그를 《자투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농사전망이 확고해 지나 사람들은 성수가 났다.
극한점에 이른 무더위와 싸우면서도 저마다 뒤지지 않으려고 강냉이밭김매기에 최대의 마력을 내였다.
온갖 잡초들을 시원히 뽑아 버린 강냉이밭은 미역을 감고 난듯 멀쑥해 졌다.

《분조장동무!- 좀 나오시라요오!-》

까막득히 보이는 밭머리에 녀인들 셋이 서서 소리를 질렀다. 산전산후휴가를 받고 집에 있는 아낙네들이였다.

《분조장, 우리 같은 <5개월유급로력>들이 분조에 셋씩이나 되니 얼마나들 더 힘들겠어요?》

도산원에 후송되여 금동이, 은동이 쌍둥이아들을 낳아 가지고 온 인숙아주머니가 하는 말이였다. 옆의 녀인들이 어줍어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셋이 후방사업이라도 하자고 해요.》

삶은 올감자와 깨국, 오이나물이였다.

《사실 우린 분조장한테 큰 죄를 지었다우.》

쌍둥이엄마가 스스럼없이 말꼭지를 떼였다. 나는 눈이 덩둘해 졌다. 나한테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창훈이가 분조장이 되면 우리 애기엄마들을 제일 볶아 댈것 같아서 투표할 때 반대를 했다우. 나만 그랬나 했더니 우리 셋이 다 그랬더라니까.》
《애개개… 입도 헤프다. 제 소리나 할게지.》

옆의 녀인들이 질겁을 했다.

《하하하…》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 몰랐다. 웃음끝에 고마운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준것이 없는데 어쩌면 이렇듯 마음속 진정을 터놓는것인가?

《이제 우리 쌍둥이가 커서 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분조장은 관리위원장이 될지도 몰라요. 그때 가서 반대한 어미의 아들이라고 복수하면 안돼요.》

인숙아주머니의 눈앞에는 벌써 다 자란 쌍둥이가 얼른거리는 모양이였다.
승승장구할 농장의 래일을 믿어 마지 않는 그들, 자기들의 행복과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해 주는 사회주의협동벌이 더없이 귀중하기에 진실하고 참된 사람을 대오의 선두에 세우고 싶어 하는 그들이였다. 그 소박한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나는 인간이기를 그만 두어야 할것이다.

《자!- 다들 쉬여서 합시다!-》

나는 사람들을 향하여 호기 있게 소리쳤다.
그날 저녁 나는 분조장회의에 참가했다가 늦어서 돌아 오고 있었다. 횅창 밝은 보름달이 밤하늘을 헤여 가고 착한 보물소리가 졸졸거리는 기분 좋은 저녁이였다.
낮에 맨 강냉이밭을 지나 마을로 뻗어 간 포전길을 별 생각없이 걷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무릎노리를 가리우는 강냉이포기들속에서 숨박꼭질을 하고 있는 단아한 그림자를 발견했던것이다. 나는 이슬에 옷자락을 적시면서 그리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뜻밖에도 송이가 김을 매고 있었다.

《아니 여기서 뭘 하오? 김을 다 맨 밭에서?…》

나는 영문을 알수 없어 의아쩍게 물었다. 조각으로 굳어 진듯 꼼짝 않고 앉아 있던 송이는 호- 하고 긴 한숨을 내그었다.

《한 처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는것이 싫어서… 그리구 분조장동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풀도 매지 않구 눈속임을 하였어요.… 분조장동문… 그런 처녀를 용서할수 있어요?》
《…?!》

나는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송이가 말하는 처녀란 누구인가? 혹시 자기자신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닐가?

《그런데 왜 송이동무가 나왔소?》
《…》

이번엔 송이쪽에서 가만 있었다. 나는 몇걸음 앞에 서 있는 전주대에 눈길이 갔다.
전주대가 서 있는 고랑은 내가 맨것이다. 그 다음엔 주봉실, 그옆엔 채홍기아바이, 그 다음줄은 송이였는데… 눈어름으로 이랑을 세여 보니 바로 지금 송이가 앉아 있는 그 고랑은 송이자신이 맨것이였다. 농장일에 단련되지 못한 그가 오죽 힘들었으면, 얼마나 따라 가기가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으랴!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일이 종시 마음에 걸려 밤에 김 매러 나온 그것이 내 가슴을 울리였다. 달빛아래 앉아 있는 송이의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불안스레 울렁거렸다.

《송이동무! 난 그 처녀를 얼마든지 용서하겠소.》

나는 때늦은 대답이라는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량심을 속였는데두요? 땅을 속였는데두요?》

송이는 거듭 따져 물었다. 터놓지 못하는 괴로움이 그의 어조에 력력히 비껴 있었다.

《그럼 송이동문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또 회의를 열가? 도대체 그 처녀가 누구요?》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

오랜 침묵끝에 호-하고 한숨이 뒤 따랐다. 무언가 망설이며 바재이며 말하기 힘들어 하는 그것은 송이 같은데가 전혀 없는 처음 보는 모습이였다. 송이! 씨원히 말하오! 모든걸 고백해 주오.

《… 됐습니다. 제가 그 처녀에게 전하겠어요. 리해하고 용서했다고…》

말끝을 맺지 않고 송이는 갑자기 돌아 섰다. 그러더니 맨발을 벗은채로 냅다 달려 갔다. 호미와 신발을 밭머리에 버려 둔채…
나는 호미를 들고 그가 매가던 이랑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걸싸게 호미질을 시작했다.
한참 일하다 허리를 펴니 맞은편에서 송이가 매나오고 있었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와 졌다. 20m, 10m, 5m…
?
?

가을이 왔다. 대지는 풍작을 안고 큰 숨을 쉰다. 자연은 봄여름 아껴 두었던 온갖 색갈로 이 가을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누런 파도속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웃는다. 번쩍거리는 낫날들이 금빛파도를 베여 눕힌다. 빨간 수확기는 누런물결속에서 자맥질하는것처럼 보인다.
저 무수한 벼포기들과 강냉이숲의 매 이삭들을 하나하나 빚어 내여 이 가을을 안아 온 사람들, 이 땅을 기름 지우고 낟알을 가꾸며 운명을 같이한 나의 분조원들!
땅과 산천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닦은 고개》전설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해마다 달라 져 간다. 보다 더 아름답게, 고상하게, 훌륭하게 완성의 경지에로 달음쳐 간다.
한해가 가고 새봄이 오면 우리들은 또다시 땅에 씨앗을 묻는다. 선대의 우수성만을 닮은 좋은 종자를 어머니대지에 뿌린다. 농민의 꿈이고 희망인 그 씨앗은 해빛과 바람과 폭우를 뚫고 가을을 향하여 줄기차게 커간다. 우리 역시 인생의 터전에서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해 간다.
나도, 나의 분조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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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2001년 1월호 68~80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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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8/22 [03: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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