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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분할통치 전형 보여준 요르단
[유태영박사의 제3세계민족해방운동사]요즘 와서 미국이 친미왕정 독재국으로 지배
유태영 박사

▲ 요르단지도, 주변 나라들과 경계선에 직선이 많은 것은 아프리카 나라들 국경선이 그렇듯 제국주의자들끼리 멋대로 나눠먹기 하느나 지도 상에 자를 대로 줄을 그어?영토가 강제로 분할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 ? 자주민보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시리아,레바론, 요르단, 이스라엘, PLO로 5분열
-그 이후 최근에 와서는 미국이 요르단을 비롯 중동지역을 간섭하고 지배

▲ 유태영 박사 ? ? ? 자주민보
요르단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팔레스타인의 역사부터 광범위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기원전(BC) 1800년경에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란)에서 유목민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는데 아브라함이 오랜 세월동안 이동하면서 통과한 지역들은 지금의 터키, 이란, 시리아 땅들이었다.


아브라함이 처음 출발했고 그 후에 그의 후손들이 수세기 동안 계속하여 이동한 목적지는 결국 우유와 꿀이 풍성한 가나안 땅이었는데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다. 그리고 그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렀던 땅은 지금의 시리아, 레바론, 요르단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북부 지역의 일부를 포함한 아라비아 반도의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땅에 기근이 극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12아들 형제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포기하고 집단으로 이집트로 이민하여 그곳에서 수세기를 살았다. BC 13세기에 이르러 유대민족은 수십만의 큰 민족적 집단을 이루었다. 이집트는 유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그들을 노예로 삼고 압박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탈출하여 모세의 지휘 아래 시나이반도에서 북상 횡단하여 광야생활 40년만에 또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와 정착했다.


팔레스타인 땅에 또 다시 정착한 유대인들은 BC 1023년에 사울왕과 따윗왕이 예루살렘에 큰 성곽을 쌓고 유대 왕국을 창건했으며 솔로몬왕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중동지역에서 제일 큰 왕국을 건설하여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솔로몬 왕국은 남북으로 대립하여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BC 63년에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남과 북의 두 왕국은 모두 다 붕괴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예수가 태어나 타락하고 분열된 유대인들을 향하여 회개의 설교를 하고 있었다.


AD 100년경에 이르러서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밖으로 모두 다 쫓겨나는 비운에 빠지게 되었다. 그 후 2,5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이른바 <디아스포라>의 처량한 신세가 되어 전 세계로 흩어진 망국의 유대민족이 되고 말았다. 로마제국은 점령한 팔레스타인의 이름을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바꾸었다.


이와 같이 끊임없는 역사적 변천에 따라 20세기에 이르기까지 2,5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은 아랍인들의 뿌리가 내려진 아랍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2,500년 동안 한 번도 독립국이 되어본 적은 없고 줄곧 여러 강대국들의 통치를 받아 왔다. 로마제국의 통치가 쇠퇴해진 후에 비잔틴 제국의 통치시대(330년-640년), 이슬람 제국의 통치시대(640년-1099년), 오스만 터키의 통치시대(109년-1800년)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이 점령을 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는데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가자지구 그리고 웨스트뱅크등 시나이 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영국이 점령하고 지배했다.



(1)영국의 팔레스타인 침략과 분할정책


오스만 터키제국과 독일이 연합한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프랑스의 승리로 끝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만 터키제국의 패전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그 때는 곧 팔레스타인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오랜 식민통치가 완전히 끝나게 됨을 뜻하였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싶은 야욕을 품고 있던 영국은 하루 속히 독일과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도록 하기 위한 속셈을 갖고 있었다. 영국은 하루 속히 팔레스타인에서 오스만 제국을 격퇴시키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을 교묘하게 활용할 묘안을 고안해 냈다.


영국이 고안한 묘안은 1915년에 작성한 <맥마흔 선언> 비밀문서이다. 이 비밀문서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편에 서서 참전을 한다면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팔레스타인을 위하여 <아랍독립국>의 창건을 보장한다는 약속이었다.


그리하여 영국은 아랍인들이 오스만 터키제국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키도록 뒤에 숨어 유도하는 수단으로 당시 메카의 후세인 왕의 셋째 아들인 파이살이 분발하여 오스만제국을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키도록 영국은 비밀공작을 시작했다.


파이살의 봉기는 드디어 성공하여 1918년에 팔레스타인의 일부 지역인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공격하여 400년 동안 통치해온 오스만 제국의 통치로부터 해방시키고 파이살은 다마스쿠스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


하지만 파이살이 공격에 성공하여 다마스쿠스의 왕이 된 것은 파이살의 능력 때문이 결코 아니라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 영국인 로렌스의 역할 때문이다.


로렌스는 누구인가? 로렌스는 영국이 파견한 정보장교로 특히 개인적인 취미로 아라비아 사막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풍부함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아라비아 사막에 대한 학자이며 동시에 영국 군부의 정보원이었다.


로렌스는 메카의 후세인 왕가에 가까이 접근하여 특히 파이살 왕세자와 동지관계를 맺는 공작에 성공한다. 로렌스는 영국의 교묘한 비밀 고급 스파이로서 역할을 하면서 만일 아랍인들이 독일군과 오스만 제국을 타도하는데 큰 공적을 세운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 승리한 후에는 반드시 <아랍독립국>이 보장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로렌스는 자기 자신이 직접 아랍인들과 함께 반란에 뛰어 들면서 전설적인 아랍인의 친구로 변신한다. 그러나 로렌스는 그의 모든 활동에 대한 비밀보고를 일일이 영국정부에 제출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아랍인들은 로렌스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제1차 세계대전이 영국과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기만 하면 팔레스타인 땅에 <아랍 독립국>이 창설 될 것을 굳게 믿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영국과 프랑스의 승리로 끝난 후에 팔레스타인들이 기대했던 <아랍독립국> 창건의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의 전리품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영국의 고급 스파이 로렌스에게 이용만 당한 파이살 왕세자는 전쟁이 끝난 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하여 다마스쿠스의 왕위에서 축출당하고 말았다.


사실은 1916년 5월 9일에 전쟁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영국은 <사이크스 피코협정>을 프랑스와 이미 비밀로 맺고 있었다. <사이크스 피코협정>은 어떤 협정인가? 이 비밀협정은 제1차 세계대전이 승리로 끝난 후에 팔레스타인 땅을 둘로 분할하여 시리아 지역을 프랑스에게 전리품으로 넘겨준다는 협정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프랑스는 시리아를 전리품으로 소유하고 식민지로 삼아 얼마 동안 통치하다가 1943년에는 시리아에 대한 통치수단의 변화로 시리아를 또 다시 둘로 분할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레바논을 시리아에서 떼어 내여 따로 독립을 시킴으로서 팔레스타인 안에 분열된 독립국들을 새로 만드는데 동의했다.


영국은 어떻게 했는가? 영국은 프랑스에게 넘겨준 시리아 지역을 제외한 팔레스타인의 그 외의 모든 지역을 영국이 차지하여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영국은 또 다른 비밀 협정을 이중으로 이미 맺어 놓고 있었다.


이 비밀협정은 영국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 국가>를 새로 창건한다는 <벨푸어 선언>이었다. 이것은 1917년에 맺어졌다. 이 선언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땅에는 레바론, 요르단, 이스라엘 그리고 PLO가 창건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라는 분쟁지역들이 발생되어 왔다.


오늘의 요르단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BC 1800년 아브라함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20세기에 이르러서 영국과 프랑스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분열공작을 하기까지의 간추린 역사를 대략 살펴 보았다.



(2)<지혜의 일곱 기둥>과 <아라비아 로렌스>에 대하여


영국정부의 고급 스파이로 오랜 동안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활약한 로렌스는 그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책을 1935년에 출판했다. 로렌스는 구약성경, 잠언 9장 1절에 <지혜가 일곱 기둥를 다듬고> 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책명을 붙였는데 영국은 이 책 역사와 문학에 빛나는 현대의 고전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라비아 반란 속에 뛰어 들어간 로렌스는 영국의 비밀정보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진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함께 싸운 공적을 인정하여 영국인 스파이 로렌스를 오히려 사막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부여 하고 전설적 인물로 높이 칭송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혜의 일곱 기둥> 속에 묘사된 로렌스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정말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필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로렌스의 양심적 고민을 그의 자서전의 문장들 속에서 발견했다.


ㄱ. 영국정부가 약소민족들에게 거짓 약속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자기 자신의 행동이 위선적이며 이율배반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고민하고 있다.


ㄴ. 로렌스는 영국군의 정보장교로 군사적 작전과 공격을 직접 지휘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은 절대로 군인이 아니라 사막에 매료된 탐험가이며 문학가라고 생각하는 착각과 이율배반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실 로렌스는 런던에서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훌륭한 학자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ㄷ. 로렌스는 영국에 대하여 애국자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허무주의자로서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는 또 <정의>와 <윤리>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상적 갈등 속에서 정답을 찾지 못하고 끝내 정신적인 고뇌와 심리적인 방황을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속에는 비밀 정보장교와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배반하고 있는데 대한 고민이 혼합되어 있는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로렌스를 무조건 <영국의 애국적인 영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영국은 로렌스의 자서전인 <지혜의 일곱 기둥>을 소재로 하여 웅장한 영화를 제작했다. 물론 정치적 선전의 목적이다. 영국이 제작한 영화의 명칭은 <아라비아 로렌스>이다. 이 영화 속에 묘사된 로렌스는 로렌스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자기의 참된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역사적으로 스파이는 두 가지 종류의 스파이가 있는데 패자의 스파이와 승자의 스파이가 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영국은 로렌스를 승자의 스파이로 부각시켜 영국의 침략적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로렌스가 성공적이며 영웅적인 스파이 행동을 팔레스타인에서 했기 때문에 영국은 단숨에 아랍세계를 식민지로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 <아라비아 로렌스> 영화에서 로렌스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영국 정부로서는 당연하다.


<아라비아 로렌스>의 영화를 제작하는데 3년 7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제작비는 2천만 달러 이상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영화제작에 동원된 낙타의 수가 무려 5000마리라고 하니 인원동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영국이 이와 같이 막대한 투자를 들여서 <아라비아 로렌스> 영화를 제작한 이유와 그 목적이 도대체 무엇일까?


영국의 침략과 제국주의적 자존심을 아라비아 사막에 매료된 그 아름답고 장엄한 예술적 감각을 최대한 이용하고 미화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된다. 서구의 제국주의적 우월성을 이 영화를 통하여 드러내 보이며 또한 영국이 아랍세계를 침략하여 통치하는데 대한 정당성을 보이려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히 숨어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한 로렌스는 아랍의 상징인 흰색의 터번을 몸에 둘렀다. 로렌스가 아랍인의 옷을 입고 다녔지만 그는 아랍인으로 위장했을 뿐 아랍인에게 그의 마음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로렌스가 아랍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것은 사막의 아름다움 때문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아라비아 로렌스> 영화에 대한 쓴소리가 있는 것에도 귀를 기울여 들어 보아야 하겠다. 이 영화는 아라비아 사막이라는 대자연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배신의 추한 모습을 유감없이 잘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이 영화를 제작한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영화를 직접 제작한 감독은 배신자의 출세를 위한 이중인격의 추악한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가 따로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영화평론가들은 말한다.


이 영화를 감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대자연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잔인한 침략과 배신을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다. 로렌스라는 한 허무적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군인 스파이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에 영국이 약속한 <아랍 독립국>이 전혀 실현되지 않은데 대한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여 군복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방황하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로렌스는 그의 죽음을 통하여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는 거짓말이다’라는 고발의 양심적 외침을 후세에 남기고 있는 것이다.



(3)트란스 요르단 왕국의 창건

영국은 1915년에 <맥마흔 선언> 비밀문서를 작성하여 10여 차례에 걸쳐 <전시 외교문서>로 발송했다. 그 비밀 외교문서의 내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편에 가담한다면 그 대가로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 그 <맥마흔 선언>은 완전히 무시하였고 프랑스에게 시리아를 분할하여 전리품으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영국은 시리아지역을 제외한 팔레스타인의 모든 지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삼았다.


영국은 <사이크스 피코>협정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비밀협정을 1916년 5월9일에 프랑스와 함께 맺고 있었다. 영국은 이 비밀협정의 미명하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하여 통치권을 획득했다.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영국은 요르단강을 이용하여 경계선으로 만들어 놓고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놓는 분할정책을 또 고안해 냈다. 그리하여 영국은 1923년에 요르단강 동안의 분리된 지역에 <트란스 요르단> 이라고 하는 새로운 왕국을 창설했다. ‘트란스’ 라는 말은 동쪽이라는 뜻이다.


물론 완전한 독립국이 아니라 다만 팔레스타인을 사분오열시키기 위한 숨은 공작 차원의 기만정책이며 영국의 통치 밑에 놓여 있는 형식적인 왕국이었다.


요르단강 동안지역 일대와 아라비아 반도 북쪽에 위치한 트란스 요르단 왕국의 총면적은 97만 2946km2 (코리아 반도의 절반정도)이며 인구는 약 6백만명이다.


영국은 메카의 히쟈즈 왕조의 후세인의 둘째 아들 압둘라 1세를 드란스 요르단 왕국의 초대 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도대체 영국은 어찌하여 팔레스타인을 동안과 서안으로 분할하고 또 동안에다 트란스 요르단 왕국을 강제로 세웠을까?


그 원인은 1917년에 영국의 외무장관이 발표한 <벨푸어 선언>에 기인한 것이다. 이 비밀 선언에 의하면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강점한 후에 이스라엘 신생국을 창설한다고 약속을 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에 신생국 이스라엘을 창건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땅에 현재 살고 있은 많은 아랍인들을 다른 어떤 장소로 분산시키기 위한 묘안을 고안했다. 영국은 고의적으로 요단강 동안과 서안을 두개의 지역으로 분할하여 동안 쪽에 나라를 세우는 정치공작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레바론과 트란스 요르단 등 여러 신생 아랍국가들이 분열되어 탄생된 것이다.


실례로 요르단의 인구는 대략 600만명인데 유입된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300만명이 넘는다. 레바논도 마찬가지다. 레바논에도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인하여 추방 당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



1.영국이 통치하는 트란스 요르단


트란스 요르단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흥미를 일으키는 땅이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에 언급된 가장 중요한 모든 지명들이 거의 다 요르단에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롯과 소돔, 모세의 광야 40년에 등장하는 모압과 암몬,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솔로몬, 12명의 예언자들, 세례 요한, 예수의 생애와 그리고 사도 바울의 역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의 역사는 요르단이 없으면 이야기 전개가 안 될 정도로 오늘의 요르단은 기도교인들에게 아주 중요시 되고 있다.


2000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요르단에 와서 예수가 세례 받은 곳을 비롯하여 5곳을 성지로 지정했다. 뿐만 아니라 요르단에는 고대에 암벽 위에 건설된 도시 페르라가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또 요르단에는 모세가 임종했다는 느보산을 비롯하여 수 없이 많은 세계적 명승지들이 가득하여 중동의 숨은 보석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는 한 방울도 없는 사막의 나라 요르단은 관광사업이 주요 산업이다.


1923년에 영국에 의하여 창설된 <트란스 요르단>의 압둘라 왕은 영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한 때 유명했던 <아랍 군단>을 설립하여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1945년에는 아랍연맹의 회원국이 되었고 1946년 5월에 명목상 완전 독립국을 달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영국은 지금까지 통치해 오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대하여 <이제는 난 몰라라>하는 무책임하게 손을 떼고 팔레스타인의 모든 문제들을 UN에 전가시키는 야비한 수단을 썼다.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문제들은 UN의 이름으로 미국이 간여하게 되었다.


1948년에 제1차 팔레스타인 전쟁 때 트란스 요르단의 압둘라 왕은 미국의 힘을 믿고 요단강 서안에 대한 욕심을 부리고 팔레스타인 서안의 일부와 에루살렘을 점령하고 나라 이름을 트란스를 (동안) 빼고 <요르단>으로 고쳐 불렀다. 압둘라 왕은 영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이제는 미국의 힘을 의지하여 정권을 강화하려고 만용을 부리고 있었다.


1951년에 요르단이 태생적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제는 미국의 힘을 의지하고 있는데 대하여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분개했다. 그리하여 초대 왕으로 등장하여 서방의 어용정권을 만들어 놓은 압둘라 왕은 결국 팔레스타인 민중의 힘에 의하여 암살당하고 말았다.



1952년에 손자 후세인 1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하지만 후세인 1세는 요르단 민중들의 반서방 세력을 제압하기 위하여 오히려 미국을 또 다시 등에 업고 친미적 왕권을 확립하였으며 1957년에는 아랍세계의 친미적 국가들과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세워 나아갔다.


1967년에 제3차 중동전쟁에서 요르단은 제 1차 중동전쟁 때 갈취했던 요단강 서안지역과 예루살렘을 몽땅 이스라엘에게 모두 다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뿐만 아니라 제3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인하여 요르단은 불청객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물결처럼 몰려 들어오는 문제에 봉착했다. 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의 게릴라 세력이 요단강 동안에 강력한 거점을 구축함으로 요르단 정권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져 있었다. 요르단 국내에서 또 하나의 정권이 형성되는 듯한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PLO는 요르단 국내에서 요르단 정부군과 충돌하여 내전을 일으킬 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 등 이웃나라들의 중재로 인하여 요르단의 내전의 위기는 겨우 임시로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전의 위기를 겨우 면한 후세인 왕은 그 후에 또 다시 미국의 배경으로 정권을 강화하여 PLO를 요르단에서 완전히 추방하여 버렸다. 이로 인하여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반미적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후세인 왕의 PLO 추방에 대하여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1994년에 후세인 왕은 친미노선을 따라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는 어처구니없는 미국의 하수인 정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후세인 왕은 아랍국가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후세인 왕은 34년 동안의 장기집권과 20년 동안의 계엄령으로 철권통치를 하다가 1999년에 그의 친미정치 노선을 반대하는 세력에 의하여 또 다시 암살을 당해 죽고 말았다.


요르단은 1946년 5월에 영국에 의하여 명목상 신생 독립국가로 창건된 이래 53년 동안에 2명의 왕이 암살을 당해 쓸어졌다. 미국은 끄떡하지 않고 즉시 그의 장남 암둘라 2세를 왕으로 세워놓고 태생적 친서방 친미정권을 계승하도록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2005년 11월 9일에 요르단에서 3개의 호텔에서 동시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호텔들은 모두 다 고급 호텔로 이스라엘인들이 선호하는 호텔로 알려져 왔다. 테러폭탄으로 67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르단 보안당국의 사전 비상조치로 인하여 이스라엘인들은 사건 전에 호텔을 떠났다는 것이다. 뉴욕의 911테러 사건을 방불케 했다.


요르단 정부는 요르단에서는 어떤 영화 든 반이스라엘 성격의 영화는 일체 상영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현 압둘라 2세 요르단 왕의 어머니는 영국인 여인이며 또한 압둘라 2세 왕도 역시 미모의 영국인 여성 라니아를 왕비로 삼고 있으니 영국과 요르단은 태생적 인연을 끊는다 해도 누가 믿겠는가?


요르단의 한 택시 운전수의 증언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의 후손으로 요르단에서 출생한 2세, 3세들은 요르단인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그들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인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같은 피부와 혈색, 같은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요르단인과 팔레스타인인을 구분하는가?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시민권 번호로 구분하도록 정치적 구조가 되여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시민권 번호에 의하여 차별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난민 후손들은 요르단 시민이면서도 요르단 군에 입대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요르단에는 4 ,5만명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난민촌이 10개가 있다. 약 600만 명의 요르단 시민권자들 중 70%가 팔레스타인 출신인데 그 중에 서 UN 난민구호기구에 등록이 되여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190만 명뿐이다.


팔레스티나인 출신중에서 요르단 왕정에 충성을 맹세한 소수만이 정부의 고위직에 취직이 된다. 만일 요르단 왕정에 대한 개혁을 바라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요르단 시민이 발각되면 즉시 시민권 박탈과 추방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며 가혹한 정치적 억압을 받게 되는 것이 요르단의 정치적 현주소이다.


또 한 가지 이 글을 마감하면서 가슴이 답답한 사연은 현제 요르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수는 약 500명 정도 되는데 이중 절반가량이 한국인 선교사들인데 이들이 요르단에서 눈에 띄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기독교인들이 이래서 되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한편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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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핵포기했지만 미국 약속 지켰나?
[해외]방북 중인 한상렬목사께 보내는 격려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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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13 [09:09]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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