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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에는 없고 ‘교예’에는 있는 것
[통일문화 만들어가며](16) 북에서는 단순한 볼거리 넘어서
중국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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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분단이 60년을 넘기면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현상들이 적잖이 생겨났다. 남쪽에 가본 북쪽사람들은 우선 거리의 간판들이 외래어투성이어서 알아보지 못하겠단다. 말과 노래도 알아듣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런가 하면 북쪽에 가본 어떤 남쪽사람들은 말이 전혀 필요 없는 교예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향을 보인다.
언젠가 금강산관광을 갔다가 교예를 구경한 어린 네티즌이 배우들이 굶어죽지 않으려고 그런 위험한 짓을 하더라고 쓴 글을 보고 쓰겁게 웃은 적이 있다. 똑같은 재주를 북반부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여줬더라면 그렇게 말했을까? 편견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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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예는 반도의 북반부에서만 쓰는 말로서 김일성 주석이 만들었다 한다. 《교묘한 예술》이나 《교묘한 기예》라고 풀이하면 되겠다. 《서커스》나 일본식 외래어 《사까스》따위 와 다른 면이 이름에서부터 강조된다. 중국에서는 《짜찌(雜技, 잡기, 잡다한 재주)》라고 부른다. 민족교예의 뿌리를 훑으면 고구려시기의 벽화에까지 올라갈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 시기의 재능이 계속 죽 전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세의 남사당패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기는 했어도 그것이 공연종목의 주류는 아니었고 또 체계를 이루지는 못했다. 왜정시대에는 《곡마단》이니 《사까스단》이니 하는 돈벌이 단체들이 아이들을 사다가 배우로 써먹었는데, 체벌과 구타가 끊이지 않았고 그 훈련법이 아주 가혹했다. 예컨대 밧줄타기를 배워줄 때에는 밑에 유리조각들을 널어놓아 배우가 일단 떨어지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한다.
남사당은 천한 사람들의 무리였고 왜정시기에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나 사까스를 했는데, 질적인 변화는 전쟁 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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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홍정자 선생이 인민배우 김봉애를 만나고 쓴 글 《평양교예단을 찾아서》는 처음에 1996년 3월호 《말》잡지에 발표됐고 후에 저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에 수록되었는데, 거기에 의하면 1952년에 교예단이 생겨난 다음 민간에서 기능자들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초기에는 배우들이 할 줄 아는대로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내력이 달랐으므로 아는 재주들도 다르고 그 뿌리도 갖가지였다. 전통, 일본식, 중국식, 서양식이 다 섞였다고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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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의 전통이 오래고 포함범위도 넓은 중국에서는 해방 후 우선 피비린내 나거나 자학적인 종목들이 금지되었다. 예를 들어 쇠공을 목구멍에 몇 개 넣고 절렁절렁 소리를 내면서 손을 내밀어 돈을 달라는 등등. 후에 시장이익 때문에 아무런 전통이나 되살리고 또 상 받기 경쟁에 눈이 빨개진 현상이 나타났기에 2008년 11월에는 처음으로 대형경기에서 고통스럽고 잔인한 종목을 금지하고 너무 어린 아이들은 공연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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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세력이 약하고 내력이 복잡했던 조선에서는 중국에 비해 훨씬 철저하게 교예를 개조하고 미학기준을 내왔는바, 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다.
1972년 8월 어느 날, 김 위원장은 외국방문공연을 위해 준비한 교예배우들의 시연회를 보았다. 그날 교예종목 가운데는 한 여배우가 다른 여배우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재간을 부리는 《여자 2인조형》이 있었는데 이미 10년전에 《인기종목》으로 소문이 났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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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시연회가 끝나자 김 위원장은 그 종목이 조선여성들의 고상한 미풍양속에 맞지 않는 기형적인 작품이라면서 이 작품에서 여자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쥐였다, 놓았다하고 여자의 머리 위에 여자가 올라서게 되어 있는데 조선여성들치고 다른 사람의 머리 위에 머리를 맞대고 거꾸로 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여자 2인조형》과 같이 비전형적인 교예는 영영 없애버리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유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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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예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체육문화적으로 교양하는데 복무하여야 하며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이 옳게 결합된 우아하고 고상한것으로 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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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아래위로 쌓여서 재주를 보이는 종목이 중국 잡기에는 지금도 있다. 남자 둘일 수도 있고 여자 둘일 수도 있으며 남녀가 합작할 수도 있다. 우에 올라가는 몸 가벼운 사람을 《짼즈(尖子)》라 부르고 기운이 좋은 아래 사람을 《디즈(底子)》나 《디쭤(底座)》라 부른다고 기억된다. 필자도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의 머리 위에 머리를 맞대고 물구나무를 서서 바이올린을 켜는 등 재주를 보여주는 배우를 위해 박수를 쳤고 감탄했었다. 그러다가 김 위원장의 일화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배우의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보는 사람들의 거부감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의 요구에는 미학사상이 깃들어있다. 이런 재주가 있으니 봐달라는 식의 재주자랑식, 기형적교예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첫 자리에 내세운다는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추어 진짜 조선식교예를 만들어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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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고생을 해서 재능을 배워주고 익혔던 사람들로서는 종목공연금지령에 눈앞이 캄캄해났겠으나 그런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 알지 못하던 재주를 배우고 만들어내게 된다. 창조의 단계에 들어가서는 재주자랑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1972년이라면 마침 평양교예학교(1992년에 《평양교예학원》으로 개칭)가 생겨난 시기이다. 과학적인 교예의 시작이기도 했다. 1973년 12월 8일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교예단 료해검열사업에 참가한일군들과 한 담화 《사회주의적민족교예를 더욱발전시킬데 대하여》에서 《평양교예단안의 전체 당원들과 예술인들이 지난 기간사업과 사상생활에서 나타난 본질적결함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엄격하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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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주의적민족교예예술에서 주체를 확고히 세움으로써 현실을 미화분식하며 인간을 기형화하고 조소하는 부르죠아적 낡은 교예창작방법을 철저히 없애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상성과 예술성이 옳게 결합되고 체육문화적으로 발전된 사회주의적민족교예의 고상하고 우아한 특징을 잘 살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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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탸우반(大跳板)》의 한 장면 [자료사진= 중국시민]
살펴보면 현재 공연되는 조선교예종목들 가운데서 순수한 조선작품은 《널뛰기》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나라들에도 《널뛰기》종목이 있으나 중국어로 《따탸우반(大跳板)》이라고 부르는 그런 종목은 널판자 부근에 설치한 도약대에서 두 사람이 뛰어내려 널판의 한쪽을 밟아주면 널판 맞은편에 서있던 사람이 그 힘을 빌어 공중으로 날아올라 동작을 취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앉는 식이다(오른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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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의 《널뛰기》는 가끔 도약대를 사용할 뿐, 진짜 장끼는 두 사람이 널판의 양쪽에 서서 뛰기 시작하다가 차차 높이 오르면서 기묘한 동작들을 보여주는데 있다. 이런 남다른 특징은 민족의 널뛰기전통이 있어서 가능하다. 널뛰기가 예전에는 여자들의 놀음이었으나 지금은 남녀가 참여하는 예술로 변해 힘과 기교, 억셈과 부드러움을 섞어 만든 미가 볼만 하다(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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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교예단의 널뛰기 공연 장면 [자료사진= 중국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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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중에 날아오른 다음 허리를 놀려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특수기법은 관성만 이용하는 다른 나라 《잡기》나 《서커스》와 다른 묘미를 지닌다. 1978년 2월에 교예예술인들의 외국방문에서 《널뛰기》가 환영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김정일 위원장은 옛날에도 《널뛰기》는 인기가 있었다면서, 이번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널뛰기》에 경탄을 표시한 것은 배우들의 기교동작이 높은 수준에 도달한데도 있었지만 기본은 민족적정서가 진하고 그 형식이 독특하기때문이라고 말하고는 그때까지 교예선전판에 붙이는 그림이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의 교예작품에서는 《널뛰기》를 그려 붙여야 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이리하여 교예선전판에 《널뛰기》를 형상한 그림이 나붙게 되었다. 그야말로 그 어떤 다른 민족의 다른 재주와 첫눈에 구별되는 가장 알맞은 선택이었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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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地圈, 땅에 놓인 테로 빠져나가기)》의 한 장면 [자료사진= 중국시민]
전통종목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물론 남들의 우수한 종목들을 받아들여 소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성공하지 못한 실험도 있었다 한다. 중국에는 《?띠?(?地圈, 땅에 놓인 테로 빠져나가기)》이라는 잡기종목이 있다. 크고 작은 테들을 무대에 세워놓고 배우들이 갖가지 동작을 취하면서 그 사이로 빠져나간다(오른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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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 다섯 개 쌓으면 높이가 2미터 훨씬 넘는데 20세기 말기에 어느 중국배우는 2. 45미터를 날아 넘어 국제교예축전에서 금상을 탔다. 당시 체육의 높이뛰기세계기록보다도 높은 고도여서 큰 화젯거리로 되었는데, 외발로 뛰어야 하는 육상경기의 높이뛰기와는 달리 두 발로 도약하기에 가능했다. 이 종목에 조선교예인들은 눈독을 들였던 모양이다. 약 20년 전 중국의 어느 교예축전에 왔던 조선 교예단체의 코치던가 하는 사람이 중국 잡기인들에게 한 말이 《잡기와 마술(?技?魔?)》잡지에 실렸었다. 우리는 그 종목을 해보려고 도약력이 좋은 배우들을 뽑아 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잘 되지 않더라, 당신들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서 웃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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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었다. 《?띠?》은 잡기에서 《충샤(??, 좁은 데로 빠지기)》부류에 속하는데 이런 재주는 후한(後漢, AD 25~220)시기의 그림자료에 나오니까 적어도 20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세월 숱한 사람들이 전승하면서 터득한 묘리는 말로나 글로는 잘 묘사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스승이 비결을 가르쳐주고 지도해주지 않는 한 제자가 아무리 애써도 헛고생일 경우가 수두룩하다. 재주가 밥벌이수단으로 되던 시대에 강호에는 《한 수를 가르칠 지언정 한 마디를 가르치지 않는다(??一手, 不?一口)》라는 말이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도 특허신청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중요한 비밀은 지켜야 한다. 때문에 아무리 사이가 좋더라도 잠재적인 경쟁적수로 될 사람들에게는 알려주지 말아야 하는 내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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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필자는 《?띠?》종목을 많이 보았는데, 중국 한족들 외에 딱 한 번 흑인들이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고난이도 기교는 별로 없고 주로 장난에 가까운 동작들로 관중들의 웃음과 박수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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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보조수단을 쓰지 않는 한 높이를 3미터, 4미터로 올릴 수 없고 또 그만큼 높아지면 떨어진 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게다가 고심한 노력을 거쳐 최고수준에 이른 배우의 고봉상태도 곧 지나가 버린다. 중국에는 사람이 많으니까 계속 배양하면 그만이겠지만 인구가 적은 조선에서는 소모를 감당해내기 어렵다. 조선의 인구숫자와 체격특징에 따라 가장 알맞은 종목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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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교예단의 널뛰기 장면 [자료사진= 중국시민]?
금년 1월에 서평방송이 전한 조선중앙TV프로에서 《널뛰기》를 보다가 높은 곳에 올라간 여배우가 둥근 테를 쥐고, 다른 사람이 널그네에서 흔들거리다가 몸을 날려 테사이로 빠져나가는 장면(오른쪽 사진)을 보았다. 널뛰기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나 《?띠?》의 기법을 녹여넣은 재주에 감탄했다. 조선의 교예인들이 일단 어떤 일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절대 낭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교예종목들을 보다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천만유감스럽게도 지금 손에 동영상이 없어 이름도 장면도 전하지 못하는데 높은 틀에 탄력있는 줄들을 드리우고 배우들이 그 줄에 매달려 오르내리면서 재주를 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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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류로 보면 중국에 오랜 전통이 있는 《고무줄(皮?)》재주에 속한다. 옛날에는 한두 사람이 올라가서 재주를 부려도 충분했지만 지금은 관중들의 눈이 높아져 여러 사람이 재주를 보여줘야 박수를 받는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그저 재주자랑에 그치느냐 아니면 보다 깊은 뜻을 담느냐에 달려있다. 필자의 기억에 중국에서는 배우들이 중차림을 하고 무술동작들을 보여주는 프로가 나왔었다. 《소림사무술》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니까 거기에 편승한 모양인데, 기교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무술훈련자들이 일부러 줄에 올라간다는 설정은 어딘가 어색했고 일종 복고주의행위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배우들이 해군차림을 했다. 현대 맛이 흘러넘치는데다가 높은 마스트가 있는 배라는 환경에서 오르내리며 사는 배역들이므로 종목과 배역, 형식과 내용이 완벽하게 결합되었다. 육군이나 공군, 미사일부대 차림을 하였더라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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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조선에서는 적당한 보조수단을 이용해 체력의 한계를 이겨내고 또 여러 모로 발휘할 여지가 많은 종목을 발전시킨다고 보아야겠다. 특히 단체의 협조를 강조하는 종목들이 강한데 이는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능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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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영화 <공중무대>(1972)의 첫 장면 [자료사진= 중국시민]
최고성공작은 단연 공중교예이다. 《공중그네비행》, 《공중전회비행》, 《날아다니는 처녀들》, 《쌍그네비행》 등 이름이 다양한데, 중국어로는 《쿵중페이런(空中?人, 공중에서 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나온 종목이지만 지금은 조선이 제일 강하다. 조선의 어떤 사람들이 아직도 교예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을 때인 1972년에 《공중무대》(오른쪽 사진)라는 영화가 나왔다. 김정일 위원장이 1971년 2월 15일 김일성 문예사상 연구모임에서 한 결론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데 대하여》에서 《우리의 교예예술을 반영한 영화도 하나 잘 만들어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한데 의하여 만들어진 재미나는 희극영화로서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허나 거기에 담긴 공중교예가 세계최고수준은 아니었다. 1979년 2월 22일, 김정일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무대예술부문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혁명가극 <피바다> 공연의 높은 수준을 견지할데 대하여》에서 문예계의 교만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교예를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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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창작가들과 예술인들은 이미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고 자화자찬하면서 예술적기량을 끊임없이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고있습니다.

평양교예단 일군들은 마치 공중교예는 자기들밖에 하지 못하는것처럼 생각하면서 우쭐렁대고있습니다. 지금 세계교예형편을 보면 공중교예작품들을 가지고있는 나라도 많고 우리의 교예배우들보다 잘하는 교예배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양교예단 일군들은 세계교예발전추세를 알지도 못하면서 대외에 나갈 생각부터 앞세우고 작품을 혁신하려 하지 않고있습니다.

일부 창작가들과 예술인들은 신문에 다른 나라 방문공연에 대한 반향기사를 내여 굉장히 떠드니 마치 자기들이 제일인것처럼 생각하면서 기량을 높이며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애쓰지 않고있습니다. 이렇게 하여가지고서는 우리의 문학예술을 더욱 발전시킬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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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모란봉교예단 김철국 배우
그 후 조선교예인들은 차차 공중회전수를 늘이고 난도를 높이면서 남들이 감히 생각못하는 동작들을 만들어냈다. 《뒤로 세바퀴돌아잡기》, 《원거리비행하며 돌기》, 《뒤로 두바퀴돌며 옆으로 세바퀴돌기》, 《공중에서 앞으로 4바퀴돌아잡기》 등등을 내놓더니 금년에는 《공중에서 옆으로 4바퀴돌아잡기》를 넣은 《공중전회비행》으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진행된 제26차 《골덴 씨르쿠스》국제교예축전에서 1등상인 《고대로마원형극장 금상》을 차지했다. 《조선신보》 2010년 3월 18일자 보도 《로마에서 명성 떨친 <비행사>- 평양모란봉교예단 김철국배우》에 의하면 세상 그 누구도 못하는 동작을 완성한 김철국 배우(28살, 오른쪽 사진)의 새로운 목표는 《5회전공중전회》라고 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갖가지 신기한 구경거리들을 보는 현대관중들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변화를 계속 만들어내겠다는 결의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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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옆으로 4바퀴돌아잡기》는 2009년에 개발성공했다는데, 그러한 성과는 많은 사람들이 몇십 년 세월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과 터득한 묘리, 비결이 모이고 또 이제는 컴퓨터에 의한 정확한 역학계산까지 합쳐야 가능할 것이다. 결코 어느 천재가 이마를 탁 치면서 깨달아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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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교예》라 불리는 조선교예의 특징을 쥐여짜면 미학, 기예, 음악 등 요소를 완벽하게 결합해 남들이 할 수 없는 최대의 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겠다. 여기에서 핵심은 민족성으로서 민족의상과 반주음악 등으로 겉에 드러난다. 또한 《공중교예에 발레무용을 결합한 작품》의 창작은 세상의 모든 좋은 요소를 자체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데 사용한다는 개방적심리가 받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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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나 다른 곳에서 교예구경을 해본 외부사람들은 하나같이 조선관중들의 소질을 칭찬했다. 배우가 혹시 실수라도 하면 절대 웃거나 야유하지 않고 박수를 착착 치면서 격려하더란다. 그러다가 배우가 다시 노력해 성공하면 열렬한 박수가 터지더란다. 귀를 째는 휘파람소리나 야유가 없다는 여기에서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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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에서 교예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사회에서는 교예가 사람들에게 건전한 사상과 슬기, 용맹과 의지를 키워주고 그들을 명랑하고 쾌활하게 만들어주는 고상한 예술로 되어 있습니다 라고 지적했다는데 원문출처를 찾지 못해 따옴표를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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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한계나 인위적으로 설정된 한계를 교예인들이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계시를 준다. 불가사의한 변화에 충격을 받으면서 기성관념이 깨지고 사고의 틀이 부서진다. 그러면 무슨 일에 부딪치든지 적극적으로 새로운 해결방식을 찾아나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예는 통일문화를 이뤄나가는데서 큰 기예를 하리라고 보인다. 어떤 바위처럼 굳어진 사고방식을 깨려면 그보다 더 좋은 쇠메가 없지 않겠는가.(2010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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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자료 2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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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평양교예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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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준공된 《다각형묶음식》건축물로서 평양 광복거리에 있다. 연 건축면적 5만 4천여㎡ 그리고 3,500석의 관람석을 갖췄다. 600여㎡에 달하는 10여개의 대연습장과 30여개의 중소훈련장 그리고 분장실과 연구실, 목욕탕(한증탕)과 치료실, 생활실 등 500여개의 방들이 구비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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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교예, 빙상교예, 수중교예, 동물교예, 요술, 막간극 등 종류대로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 장소에 앉아서 관람하도록 순서에 따라 자동기계화된 무대들이 순식간에 교차된다. 그래서 금시 널을 뛰고 줄타기를 하던 무대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막간극배우가 실제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나타나는 수중무대(직경 14m, 물깊이 3m, 물용적 300t)가 등장하고 또다시 순식간에 그 무대는 은백색의 빙판으로 변하여 한껏 아름답고 낭만적인 빙상무대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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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평양교예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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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설립. 당시 명칭은 평양교예학교.
1976년 3월에 첫 졸업생들을 배출.
1992년에 평양교예학원으로 개칭.
한 번에 80여 명 신입생을 받고 9살~ 10살부터 입학할 수 있으며 6년을 배운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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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4/04 [05:05]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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