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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육문중학교도 가짜인가?" 답하라
[칼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방문한 육문중학교와 김일성 주석의 인연
김상일(전한신대학교 교수)
[편집자 주: 이 기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 직후 필자가 본지에 보내온 것인데 본지 편집자가 중국 취재를 다녀오는 바람에 이제야 올리게 된 점 필자와 독자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특히 이 기사는 현행법상 민감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육문중학교 방문의 의미를 바로 분석하는 것이 향후 한반도와 세계정세를 예측하는데?꼭 필요하다는 점과?기본 텍스트인 '김일성 주석 회고록'을?인용 소개하는 수준의 글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늦었지만 여기 소개한다. 특히?이 글에도 나와 있듯이?김일성 주석은 육문중학교에서 진보적인 사상을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많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왕성한 반일반제애국활동을 펴는 등 사상탐구와 실천을 통해 독창적인?주체사상을 창시해갔다는 것이 북의 주장이다. 그런 육문중학교를 후진타오주석의 직접 안내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방문했다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김일성 주석의 뜻을 이어 세계적 범위에서 반제자주 위업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다시한번 강조한 것이며 중국도 그 길을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중국에서 만나본 많은 중국의 학자들도 연이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방중과 후진타오주석의 전폭적인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환영이 의미하는 바도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세계 반제자주화 행보에 중국이 전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면 향후 한반도에 그것이 미칠 영향은?적지 않을 것이다.?미국의 중국 동원?대북봉쇄와 압박이 파탄난 정도가 아니라?중국의 반미반제 타격을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만약 미국이 용납할 의지가 없다면 동북아에서?거대한 힘의 대결전이 펼쳐질 수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의?통일외교뿐만 아니라 경제위기극복에도 심각한 영향을?미칠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의 가치판단과 본지의 편집방향은 무관함을 밝히며 사진은 본지에서 2005년 현지를 방문하여 직접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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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길림 육문중학교 도서관의 김일성주석 항일기념관에 세워진 김일성주석 중학시절 모습의 동상과 사진 ? ? ? 자주민보 2005년 현지?방문?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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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시절 김일성주석이 도서관 서기일을 보았던 육문중학교 도서관, 지금은 김일성주석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 ? 자주민보 2005년 현지 방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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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번 8.8내각 청문회에서 김태호는 거짓말의 일관성이 없어서 낙마하고 말았다. 자고로 가짜나 거짓말은 결국 끝까지 일관성을 지킬 수 없어서 탄로 나고 만다. 거짓말의 일관성은 맥락에 의하여 결정 난다. 김태호와 박연차의 관계와 같이 다른 인물 혹은 사건과의 맥락에서 진실을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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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정일위원장의 길림 육문중학방문은 김일성가짜론을 불식하기에 충분했다. 김일성이 가짜라면 육문중학교도 가짜 학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중동과 한국 학계는 그 동안 주장해온 김일성 가짜론에 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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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육문중학교와 그 주변의 인맥 그리고 사건을 연관시켜 놓았다. 김태호가 박연차와의 관계에 관한 일관성을 유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 되고 말았듯이 나의 이 글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김일성가짜론’ 은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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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가짜이면 육문중학교도 가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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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가짜론' 을 남한에서는 대학교수도, 박사도, 초립동들도, 아녀자들도 다 그대로 믿고 있다. 전 성균관대학 교수였던 이명영이 한 번 주장해 써 놓은 글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대로 굳어져 신념화되어 가고 있다. 김일성연구의 대가 서대숙교수가 가짜 김일성은 없다고 그렇게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기야 아직도 미국인구의 20% 정도가 천동설을 믿고 있고,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하고 있다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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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가짜론'이 이렇게 강고하게 우리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마당에 이번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이 다녔다는 중국 길림에 있는 육문중학교를 방문하고 학교 앞의 김주석 대형 동상과 그가 공부했던 방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짜가 버젓이 중국에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중학교 까지 다녔다고 언론 매체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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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자들은 믿겨지지 않아서 중국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길림 방문에 맞추어 날조해 놓았을 것이라고 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중동이라면 얼마든지 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둔갑시킬 수도 조중동이 그랬을 만도 한 데 어쩐 일인지 '육문중학은 가짜' 라는 말을 왜 한 마디도 보도 하지 않는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중동은 답해야 한다. "육문중학교도 가짜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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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가짜론' 은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육문중학 방문으로 단 번에 날려버리기에 족했다. 김일성주석의 항일유격 활동의 시작은 바로 육문중학교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육문중학과 김일성의 연계가 사실이라면 그 이후부터 나비효과 같이 인과의 인과는 여기서부터 그물망같이 연결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말해 놓은 '김일성가짜론' 은 휴지조각이 되기에 충분하다. 다시금 도전장을 던진다. 조중동과 대학교수들은 역사의 진실 앞에 진실을 고백 하든지 해명을 하든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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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문중학교도 ‘세기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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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에 한창 학업에 열중하고 어머니가 해 주는 야식 간식 먹으며 자라나야 할 때에 그 당시의 모든 그 또래의 청소년들이 그러했듯이 김성주는 배움의 운도 없었고 배우고만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고향 평양 창덕학교에 다니던 중에 아버님 병환 소식을 듣고 무순으로 돌아와야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화성의숙에 들어갔지만 그 곳에 더 이상 있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중 가장 공부하고 싶었던 곳이 육문중학교였는 데, 일본 개들은 혁명아의 냄새를 맡고는 그를 감옥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렇게 육문중학교는 그의 마지막 학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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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제도권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역사의 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대학을 못나왔지만 평양에는 '김일성대학' 이 있다. 마찬가지로 학교 문턱에도 안 가 본 여인의 이름을 딴 '장철구상업대학' 도 있다. 이 말은 북에서 배움의 기준은 남쪽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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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길림을 갔으며 길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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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는 그가 육문중학교에 간 동기, 그리고 입학하게 된 과정, 수학 도중에 생긴 일들에 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즉, 제 1 권에서는 '선진사상의 탐구' 라는 제목 하에 육문 중학 시절을 회고하고 있을 만큼 김일성주의 사상 노선의 발상지가 여기 부터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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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길림에 가게 된 동기는 화성의숙의 고루한 학습 내용과 소위 오늘 한국 보수들이 그러하듯이 봉건 잔재 의식에서 한 발걸음도 교육 내용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림' 그리고 '육문중학교' 에 대하여 김주석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집에서 한달 가량 머무르다가 설까지 쇠고 이듬해 정월중순에 무송을 떠났다. 내가 길림에 도착한 것은 행인들의 왕래가 번잡한 한낮 이였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대도시의 번창한 풍경은 첫 순간부터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지대에서만 살아온 나를 위압하는 상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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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명의 한 소년이 앞으로 대제국 미국을 쥐락펴락 할 인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가슴 설레며 길림 기차역을 빠져 나온 김성주가 받은 첫인상은 길림의 물장사군 들이었다. "그날 내가 본 도시의 풍경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거리에 물장사군 들이 많은 것이었다. 물의 도시로 이름나 한때는 선창이라고도 불렀다는 고장인데 음료수가 부족하여 저렇게 물장사만 성행해가니 길림이라는 도회지의 생활이 점점 각박해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짜증스럽게 투덜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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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세상의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면서 "너희는 무엇을 보려 광야에 나갔드냐. 좋은 옷 입을 사람들 이드냐 바람에 날리는 갈대더냐" 고 묻고 있다. 성주의 첫 눈에 들어 온 것은 그 도시의 가장 하층 막장에 사는 물장수들의 모습들이었다. 이들이 이 도시의 상표 같이 느껴지게 한 것은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해주는 방향타와도 같았다. 그렇다. 성주가 여기에 온 것은 저들을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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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거리에서 이렇게 한 눈에 들어 온 물장수들의 행렬을 목도한 혁명아는 이렇게 자기의 호연지기를 말한다. "물 한모금에도 수판알을 튕겨야한다는 도시생활의 중압감이 첫 걸음부터 심신에 육박해왔지만, 나는 그 중압에 저항하는 심정으로 가슴을 쭉 펴고 활개를 치며 도심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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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주는 호연지기와 함께 북산방향을 향해 쭉 뻗은 차루가를 따라 걷는다. 자기가 역사 속에서 무엇을 해야 겠다는 사명감과 의무감이 있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온 우주가 자기의 집일뿐이지 낯 선 곳이란 것이 따로 있는 법이 아니다. "길림은 처음 와 보는 생소한 고장이었으나 별로 낯이 설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던 곳이고, 아버지의 친구들이 많은 곳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나의 수첩에는 내가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할 아버지의 친구들과 친지들의 주소가 십여 개나 적혀있었다. 오동진, 장철호, 손정도, 김사헌, 현묵관, 현익철, 고원암, 박기백, 황백하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길림에 있는 아버지의 친구들이였으며 내가 만나보아야 할 사람들이였다." 이런 인물들은 아버지 김형직 선생이 어떤 분이었고 무엇을 하다 죽었는지를 말 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남한 학자들은 김형직 선생도 가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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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유명하지만 미국에선 'helicopter father'가 있다. 우리말로 '잠자리 아버지'라고 나 해둘까. 기러기 엄마/아빠와 비교가 된다. '잠자리 아빠' 란 자식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용돈 같은 것을 날라주는 아빠란 뜻이다. 그러나 성주에겐 이런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시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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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찾아 간 사람의 집이 오동진이였다. 차루가와 상부가사이에 있는 그의 집부터 찾아갔다. "사실 그때 나의 마음은 은근히 긴장되여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모처럼 주선해준 화성의숙을 중퇴한 것 때문에 오 사령이 못마땅해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동진의 말 한마디는 "소문도 없이 길림에 불쑥 나타난 너를 보니 너의 아버지생각이 떠오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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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숭실중학교를 그렇게 갑자기 중퇴하셨더랬지. 나는 그때 그 소식을 듣고 여간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퍽 이후에는 아버지가 결심을 옳게 하셨다고 생각하였다. 아무튼 여섯 달 만에 의숙을 포기하고 길림으로 온 그 결단성이 놀랍다. 길림이 리상에 맞는 고장이라면 여기서 너의 우물을 파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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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인물은 남의 과거를 들추어 탓하지 않는 법이다. 현재 그 사람의 위치와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는 법이다. "역시 오동진다운 활달한 사고방식이라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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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오동진은 성주를 삼풍잔(삼풍려관)에 데리고 가서 독립운동자들에게 인사시키였다. 그 독립운동자들속에 김시우가 소개신을 써주면서 만나라고 하던 김사헌도 있고, 정의부 경호대장으로 활동하는 장철호도 있었다. 이 여관주인은 손정도목사의 동향인이였다. 그는 평안남도 증산에서 살다가 손목사의 권유로 길림에 들어와 삼풍려관을 운영하였다. 삼풍려관에서 일본령사관까지의 거리가 100미터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독립운동자들의 본산지가 삼풍려관인 데도 일본 영사관은 지척에 있었다. 이를 두고 "등잔밑이 어둡다." 고 한다. 그런데 삼풍려관에서 애국자들이 붙잡혀가는 불상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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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유격활동을 할 때에 김주석은 '일로천행'이란 전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적들이 빤히 보는 대로를 보무당당히 걸어 돌파하는 전법이다. 이것도 아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에 근거한 소박한 전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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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육문중학교를 소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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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를 육문중학교에 소개한 장본인은 김사헌이다. "김사헌은 김시우의 소개신을 보고나서 나에게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김강이란 조선사람이 길림육문중학교에서 교원을 하는데 그 학교에 들어가는것이 어떤 가고 물었다. 시내에 신흥사회계에서 세운 사립학교인데 길림에서는 그중 경향성이 좋다는 것이였다. 길림육문중학교가 경향성이 좋은 학교라는것은 사회계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교장은 리광한인데 부임된 지 얼마 안된다고 하였다. "교장을 네번이나 갈아치운것만 보아도 육문중학교가 정의와 법도를 얼마나 중시하는 학원인가 하는것을 알수 있었다. 육문중학교의 이 혁신적인 교풍이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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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헌은 다음날 성주를 육문중학교의 김강선생한테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의 안내로 리광한교장을 만났다. 리광한은 중국민족주의좌파에 속한 사람으로서 주은래총리의 중학시절동창이었고 어려서부터 주총리의 영향을 받은 량심적인 지식인이였다. 내가 주총리와 리광한교장의 연고관계를 알게 된것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언젠가 나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주은래총리를 만나 청년시절을 회고하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중국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리광한 교장의 이름을 들었다. 주총리는 그 말을 듣자 여간만 반가워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천진에서 남개 대학부속 중학교에 다닐 때 그와 같이 공부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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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문중학교에서 그의 포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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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한교장은 그날 성주에게 학교를 졸업하면 장차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고 물었다. "내가 나라를 찾는 일에 한몸 바치고 싶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더니 그는 아주 좋은 포부라고 긍정해주었다. 흉금을 터친 담화의 덕이라고 할지 리광한교장은 1학년을 거치지 않고 2학년에서 공부하게 해달라는 나의 요구도 쾌히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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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한 교장의 도움은 지대했다. "청년학생운동과 지하활동을 하던 시기 나는 이 선생한테서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그는 내가 혁명사업 때문에 자주 결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아주었으며 군벌당국에 매수된 반동교원들이 함부로 나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이모저모로 보호해주었다. 군벌이나 영사관경찰들이 나를 붙잡으러 올 때면 미리 련락하여 울타리 밖으로 빼돌리기도 하였다. 교장이 량심적인 지식인이다보니 그 밑에서 많은 사상가들이 발을 붙이고 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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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문중학교시절 누가 성주를 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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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가 육문중학교에 입학하고 돌아오자 오동진부부는 성주에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에 들어가지 말고 자기네 집에서 다니라고 하였다. "사실 그때 내 처지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였다. 나는 어머니의 뒤받침으로 공부를 해야 하였는데 우리 어머니는 병약한 몸이였다. 어머니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삯빨래와 삯바느질로 품을 팔아서 한 달에 3원정 도씩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 돈으로 월사금과 공책값, 교과서 값을 대고나면 신 한 켤레 사신기가 힘든 형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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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게 아버지는 고인이 되었고, 어머니는 삯빨래 삯바느질로 보내주는 학자금이 전부였다. "이런 처지에서 나는 아버지친구들의 권고와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길림에 가서 처음에는 오동진의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 다니었고 그가 체포된 다음에는 장철호의 집에 한 1년, 현묵관네 집에도 몇달 그리고 오동진의 후임으로 정의부의 사령을 하던 리웅의 집에도 얼마간 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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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문중학시절 무엇을 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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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경들에게 쫓겨 다니는 조선 독립운동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길림에 많이 모여들어 "동북 3성에서 배일의 책원지는 길림" 이라 할 정도였다. 새것을 지향하고 진리를 찾아 모대기는 청년학생들도 이 성시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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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성주에게 길림은 형형색색의 사상조류가 집결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길림에 왔을 때 ≪ㅌ.ㄷ≫의 몇몇 성원들은 화전에서 약속한대로 이 도시에 와서 문광중학교를 비롯한 시내 학교들과 기관구, 선창 등에 적을 붙이고있었다. 그들은 내가 길림에 나타나났다는 소문을 듣기 바쁘게 오동진사령의 집으로 뛰어왔다. 돈이 귀하고 마실 물이 귀하고 땔 것이 귀하지만 책이 많아서 좋다. 나는 책이 많으면 배고픈 고생과도 타협할 수 있다고 롱을 하였다. 그것은 나의 진정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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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길림이 성주에게 준 혜택은 그가 상월선생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던 원치 않던 도산 안창호를 간접적으로나마 조우했다는 사건도 큰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그가 생후 처음으로 옥살이를 한 곳도 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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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회고록을 중심으로 김일성과 육문중학교 그리고 그 주변을 엮어 놓아 보았다. 여기에 일관성이 있는지 없는지 한국 학계는 답해야 한다. 그리고 조중동은 역사를 더 이상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은 여행이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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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16 [23:37]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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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은 뭔데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난리야? 나그네 10/09/17 [11:06]
되게 웃기는 사람이네?
일케 핏대를 세우면 김정일에 이쁨 받을줄 아나보지? 수정 삭제
미친사람 멍청이 10/09/17 [14:11]
미친녀석 지실을말하는데 팃대를 세운다고? 수정 삭제
재미동포와 친근한 자주민보! 미주청년 10/09/22 [06:45]
김상일 교수님 글 참좋네요 ^*^;;
민족통신과 자주민보에 올라오는 유태영 박사님의 제3세계 글도 좋고
자주민보와 민족통신에 올라오는 예정웅 선생님 글도 참 좋네요...
이창기 선배님 건강하세요
추석도 ...
아 큰비피해가 없었으면 ...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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