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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확신이 안겨준 불변의 신념
박선애 열사가 깨우쳐준 신념과 생의 가치
이창기 기자
▲ 여성 비전향장기수 박선애 열사와 윤희보 북송 비전향 장기수 부부 ? ? ? 자주민보


25일 향년 84세로 육체적 생을 마감한 박선애 열사의 일생은 불처럼 뜨거운 신념의 한 생이었다.


아버지는 남한 정부에서 사후 표창장을 수여했을 정도로 공인된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유명한 의사였고 어머니는 일제시대 일제 행정기관에서도 한 개 군을 지도할 권한을 줄 정로 뛰어난 잠업기술자로 많은 여성들의 생활을 돌보고 글을 가르쳐 문맹을 타파하고 애국의 의지까지 키워준 여성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런 부모의 지도로 세계 철학, 역사, 문학에 식견이 높아 청년들을 늘 구름처럼 몰고 다니던 오빠의 방에서는 밤새 화톳불에 익어가던 고구마, 밤과 함께 푸시킨, 발자크, 톨스토이, 고리키 등의 문학작품에서부터 백두 밀림의 생동한 항일무장투쟁 이야기까지 식을 줄을 몰랐으며 일제가 패망하자 오빠는 그간 조직해온 청년들과 함께 미군정의 지배와 분단을 결사반대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나 용감히 싸우다 여순 항쟁 와중에 체포 투옥되어 재판도 없이 학살되었다.

그리고 연락병으로 지리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십대의 어린 나이에 희생된 남동생.


이런 애국적이고 진보적인 가풍 속에서 자연스럽게 애국적인 삶을 배우고 반일 독립운동을 실천해온 박선애 열사이기에 오빠의 뜻을 이어 여동생 박순애 여사 함께 결연히 지리산에 올라?투쟁하다 체포 투옥되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함 없이 신념을 지켜 싸웠다.

박선애 여사는 생전 본지와의 대담에서 유족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안이었지만 일제의 집요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이렇듯 온 집안 식구들이 항일 독립운동에 떨쳐 일어나 8.15 그날까지 변함없이 싸웠던 것도 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기어이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높은 민족적 양심과 함께 백두산지대와 동북만주의 밀림지대에서 활동하던 항일혁명군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일제보다도 몇 배나 더 강력한 미국에 맞선 항미구국 지리산유격투쟁, 그리고 연이은 조국통일운동을 조금의 주저나 동요도 없이 실천해 온 것도 우리 국민들이 언젠가는 모두 백두의 기상으로?자주통일 투쟁에 떨쳐나서 반드시 그 승리를 이루고야 말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가혹한 고문과 전향강요를 여성의 몸으로 기어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남편 윤희보 비전향장기수와 함께 사회안전법으로 비전향자들만 다시 체포 재구속 되던 당시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던 엄마 아빠를 울며 따라오던 6살 어린 딸, 옥중에서 청춘을 다 보내고 나이 40을 넘어 얻은 그 고운 딸아이가 고아원에 보내져 해외에 입양이라도 되고 나면 영영 못 찾게 된다는 그 무서운 걱정, 수많은 밤 옥중에서 눈물로 지새우다 오죽이나 어린 딸이 걱정되었으며 처음으로 심각하게 전향을 고민해보았다던 박선애 열사가 결국 딸과 영영 헤어진대도?양심과 신념의 길을 택했던 것도, 그렇게?끝까지 비전향 장기수로 남게 되었던 것도 확고한 승리 확신이 의지를 바로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박선애 열사는?보호관찰소?여사에 홀로 비전향장기수로 4년여 간 구속되게 되었고 결국 사법부에서도 한 사람 때문에 여러 명의 교도관과 여러 부대시설을?언제까지 운영할 수 없어?전향 없이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증언해줄 동지가?없어 대부분 사람들이 당연히 전향하고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런 사실을 익히?알았음에도 굳이 비전향을 증명하려 애 쓰지 않은 것도 승리의 그날 조직에서 알아주면 그만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선애 여사는 63인의 비전향장기수 북송 당시 정부에서 북송 의사를 물어왔을 때, 남편에게는 북송을 권하면서도 당신은 남녘에 남아 변함없는 통일운동의 길을 걸을 결심을 세운 것도 그 승리를 하루라도 앞당기려는 의지 때문이었으며 특히 가장 가혹한 탄압속에서도?민족을 위해 굴함없이 싸우는?한총련 청년학생들의 곁을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의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승리에 대한 철의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박선애 열사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왜 우리민족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지!’, ‘그 승리가 시시각각 어떻게 개척되어가고 있는지’를?확고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한 기초 위에 실천으로 체득하여 세워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95년 통일원년 된다더니 어디 통일이 되었는가.’
‘2003년까지 이행된다던 북미제네바합의는 또 어떻게 끝나고 말았던가’!라며 ‘쉽게 승리 확신’ 운운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선애 열사는?그 애국의 한 생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실천을 통해 체득한 승리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결국 양심과 신념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조국통일, 그 전망이 열리고 있다.


비록 박선애 열사의 육체적 생명의 숨은 멈추었지만, 승리에 대한 열사의 신념, 그 신념으로 지켜온 전사의 양심, 그 양심과 실천이 키워온 정치적 생명은 조국의 역사와, 박선애 열사가 그토록 사랑했던 청년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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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위원회 알림 -----------------------?
자매 박선애, 박순애 여사는?모든 것을 다 받쳐 민족을 위해 살아오셨으며 두 분 모두 고문후유증으로 장기간 투병생활을 해 오느라 밀린 병원비와 동생 박순애 여사의?치료비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열사 가시는 길 따뜻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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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계좌: 우리은행 174-08-191285? 윤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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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선애 여사 유골 북송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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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 붉은 피만은 청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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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27 [08: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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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삶을 흠모합니다 도인 10/09/27 [09:54]
여자의 몸으로 한 평생을 굳은 신념으로 사신 고인의 위대한 삶에 무한한 존경과 흠모를 표합니다. 고인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조국통일이 머지않은 것 같군요. 아울러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을 기구한 딸의 소식도 궁금하군요. 수정 삭제
통일이여... 통일 10/09/28 [22:09]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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